7/03/2013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되었던 時節 .. :p



강을 지나고 산을 지나며..
자정이 가까워 올 즈음이 되도록 계속해서 달려가다 보면
헤어 무스로 빳빳히 다려졌던 머리카락들 역시
찬 바람을 제대로 맞아 자연 상태의 부시시함과 더부룩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현란하고 복잡한 도시의 중심을 빠져 나가며
밤 공기에 점차로 산소량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어슴프래 하던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지프의 문짝을 뜯어내고 지붕을 벗겨 냄과 동시에
나 역시 넥타이를 풀고 흰 와이셔츠를 두터운 모직 셔츠로 갈아 입었고..



달빛을 받으며 별빛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해가는 나의 지프는
뮤직 스튜디오 공간으로 변해 David Bruback 을 만나고, Queen을 만나고, Bach 할아버지도 만나고,
Kings Singers 를 알현 하기도 하고 또 조수미의 열정에 취하기도 했다.

어떨 땐 이문세 가락에 눈물도 찔끔 거리고
박 화요비의 애 타는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 거리기도 했다.

'...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 보아요...'


끊임없이 달리는 지프는 대기의 기운을 그대로 호흡할 수 있는 온전히 개방된 공간이 되고,
인간이 유사 이래 추구해온 속도에 대한 도전장이 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람을 온 몸으로, 온 얼굴로 맞이할 수 있는
그래서 제 속도를 내고 달릴때면 내 몸뚱이가 풍동 시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캄캄한 밤, 숲속과 계곡 속을 천천히 지나면서는
지붕이 개방된 지프 속으로 온갖 곤충들이 낙하산 처럼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처럼 신비한 곤충과 풀의 나라로 들어온 피터가
그저 어린아이 처럼 좋아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한 겨울 그믐 즈음, 눈이 펄펄 나리는 날에 달릴라 치면
양털 스웨터 두개에 파카를 입고 그 위에 또 스키 파카 까지 입어야 했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그 위에 또 벙어리 장갑을 껴야 했고
얼굴을 온통 가린 눈 만 빠꼼한 털 모자에 고글까지 써야 했다.

그리곤 windshield 를 접어 내린 채 내 달렸다.


눈오는 영하 10도 길을 130km 이상으로 달리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40도로 내려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쪽으로 달리다 민통선을 만나면 돌아섰다.

우리는 남쪽으로 달리다 땅끝 마을을 만나면 돌아섰다.
우리는 서족으로 달리다 탱크 훈련장으로 진입해 놀았고
우리의 동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우리의 聖地인 갑둔과 방태산 그리고 오대산이 있었다.


이런 멋진 철마 들을 몰며 산하를 누비는 기분은
경험 해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짐작하기 쉽지 않은 바..


난 당시 주로 해외를 돌아 다니며 일하던 때라 한국에 돌아오면 크게 바쁜일이 없었는데..



당시 난, 매년 받아오던 회사의 스톡옵션 을 팔아 산 Jeep를 시작으로
코란도 탑차, 코란도 오픈카, 3대의 크라이슬러 랭글러 지프,
그리고 한대의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를 거치며 오프로드 활동을 해 왔었다.




야생마가 뛰어놀던 넓고 아름답던 강원도의 오지 갑둔은
조그마한 초등학교에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지고 마을의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 가서는
이젠 말 대신 탱크들이 뛰어노는 기계화 전술 훈련장이 되었다.

탱크들을 모는 전차병들과 눈 인사를 해가며 지프를 종횡무진 野地를 누비는 서부 시대적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가득한 흙 냄새와 풀 냄새.. 그래서 내 몸안에서, 내 가슴 한 가운데서도 마구 피어나는 듯한
그 자연의 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 옆엔 우리의 高地 1,200m 의 구룡덕봉이 우뚝서 있었고
눈 쌓인 삭풍의 겨울.. 그 정상에서 바라본 태백의 준령들은
우리 사나이 가슴에 굵은 선을 다시 긋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내린천을 지나 찾아 들어가는 밀림 지대는
밤새도록 지져귀는 풀벌레 소리와 달빛 정기를 받아 흐르는 차디 찬 계곡 물의 울림으로 하여 마음의 풍경을 밤새도록 울리도록 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에서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여정 도중에는
오일장(五日場)이 섰고 삼일장도 섰었다.


작지만 정이 넘치는 재래 시장을 돌아보며 사람을 느끼며 삶의 향기를 맏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발가 벗겨진 닭 몇 마리를 사기도 하고, 통마늘 한 줌과 막 소주 몇병 정육점에서의 잘 썰어진 삼겸살 한 부대, 그리고 소금..

강물을 퍼다가 닭과 마늘을 넣고 장마에 떠내려온 장작을 지펴 펄펄 끓여 닭백숙을 해 먹으면 더 이상 구수 할 수 없었고
두텁게 썬 삼겹살은 덤불과 장작으로 달궈진 커다란 편평한 바위 위에서 기름이 쏙 빠진 채로 자글 자글 익었고,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스크림 처럼.. ㅎ

강가 나 바닷가로 갈 적에는 별 다른 음식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스쿠바 멤버들이 팔뚝 만한 끄리나 쏘가리를 건져 올렸고 간혹 솥뚜겅 만 자라도 들고 나왔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 달 빛을 받으며 물속에서 불쑥 불쑥 한명씩 일어나며 물고기들를 어깨에 잔뜩 걸머 지고선
온몸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오는 우리 스쿠버 친구들의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코믹하기 까지 했는데..

횟집 주방장이 혀를 내두들 정도의 칼놀림으로 꺽지의 회를 뜨고 쏘가리의 회를 떴다.

스카치와 함께하는 깊고도 상쾌한 새벽 공기 속..
아름다운 달빛 아래서 사나이들과의 대화와 함께했던 한점 한점 고기와 물고기 회는
아무리 돈으로 호사를 부려 사려해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메뉴였던 것이다.


엔진이 차체 프레임에서 뜯겨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핸들이 부서져 산 꼭대기에서 조향이 전혀 되지 않는 차를
뒷차가 뒤에서 끌어 당기며 내려 오기도 하고..


차 엉덩이가 진흙 웅덩이에 완전히 빠져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밤새 윈칭으로 겨우 빠져 나오기도 하고.. ㅎ


하지만 다음날 아침엔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해진 녀석의 본닛.


얼음이 유리 같이 얼어 붙은 절벽 꼭대기 길에서 지프와 같이 굴러 떨어질 뻔도 하고
엄청난 여름 장마비에 2m 앞 길이 유실되어 그 앞에서 바로 서지 앉았다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말 즐거웠고 스릴이 넘쳤다.


오프로드 취재를 위해 나섰던 라이더의 스포티지가 강 가운데에서 침수로 멈춰서자
웬일이니!.. 쾌재를 부르며 윈칭으로 끄집어내 엔진을 말리기도 하고.. ㅎ


폐교 수위실에서 폐 자재와 같이 딩굴며 괜히 꺼낸 귀신 이야기로 벌벌 떨며 자면서도,
영하 20도의 눈폭풍 나리는 깊은 계곡 속 지프 안에서
번데기 처럼 침낭 속에 들어가 고꾸라져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즐거웠고.. 언제나 상쾌한 아침을 맞았었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

내가 지프에 빠져 온 산하를 돌아다니는 동안..
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하게 가족과 유리되어 있었다.

나만 좋자고 혼자서 신나게 놀고 있었던 거다.
원래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정도가 정말 많이 심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내와는 물론이고 아직 어리다고 만 생각했던 아이들과의 대화가 사라졌고
그나마 잦은 해외 출장으로 가족과 마주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말엔 지프를 몰고 어느 산엔가를 오르고 있었던 거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었다면.. 아마, 지금 쯤 이곳 에서도 시간이 날때 마다
길 아닌 길을 찾아 가족 중 누군가를 데리고 떠나곤 했을거다.


정도가 지나치면 항상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그것이 지프가 되었건, 음악 듣기가 되었건, 사진 찍기가 되었건.. 도가 지나치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당시 아이들과 아내에게 진 많은 빚을 갚느라,
가족들 앞에서 온갖 아양을 다 떠는 양순하고도 헌신적인 아빠로 거듭나고 있다 생각한다.

뭐든 제대로 뿌리를 뽑아가며 즐기는 건 좋지만, 현실감까지 잃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 난,
이젠 그러한.. 길이 아닌 길에 대한 즐거웠던 추억만을 되새김 질하며
오늘도 굳건히 현실의 땅에 발을 딪고서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는 거이다. :p





어쨌거나 지프에 너무 심취했었던 피터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데,
그럼 이 지프가 도데체 어떤 물건 이기에,
한번 빠진 사람들은 당췌 그 늪에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은 건지 좀더 알아보기로 한다.

지프라는 차는 2차 세계대전의 미국에 의해 개발된 소형 군용 차량이었다.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 작동해야 하는 만큼
미 국방부의 성능 요구 조건이 매우 엄격한 상태에서 탄생되었는데..


  
Colonel Bogey March :Mitc Miller & His Orchestra

전쟁이 끝나고, Jeep는 연합국이었던 많은 나라의 군에서 사용됨은 물론이고
CJ (Civilian Jeep :민간용 지프)란 명칭으로 일반 백성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된다. ㅎ


우리나라에선 '사하라 특공대' 란 이름으로 방영된 TV 시리즈, the Rat Patrol..
1966 부터 2년간 방영된 이 전쟁 드라마에선 2차 세계대전 중
두대의 지프를 타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하는 연합군의 모습을 그렸는데
윌리스 지프의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빅 모로의 전투 (Combat)과 함께 전쟁 드라마 팬들에게 아주 잘 알려져 있는 드라마가 되겠다.


지프의 역사를 일으킨 미국에는 워낙 이러한 오래된 모델에 대한 수집가들이나 애호가들이 많아
지프의 차체와 프레임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부품들이 어떻게든 유통이 된다.
어떤 이들은 부품을 도면을 참조하여 직접 만들어 쓴다.
또한 분해 조립을 위한 두터운 매뉴얼들이 모든 차종에 대해 발간되어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시간이 있고 돈이 있으면..
자신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이다. ㅎ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굴러다니는 코란도의 베이스 모델인 뚱뚱이 CJ-5...

한국에도 신진 지프, 거화 지프 등의 초기 지프 생산 업체가 미국의 CJ-5, CJ-7 등의 모델을 베이스로
지프를 선 보이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지프가 굴러다니기 시작한 거다.

이후 쌍용자동차에서 CJ-7을 베이스로 하여 좀 풍성하게 만든 코란도란 이름의 지프를 생산
검은 색의 지프는 당시 기관장들이나 지방 유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나온 기계식 장치들로만 이루어진 코란도 지프가 오프로드를 하는 이들에겐 가장 인기가 좋다.


경사각, 진입각, 이탈각, 또 빗면 허용 각도등 나름대로 지프의 효용성을 자랑하는 데이터들이다..

이 한국형 코란도들은 미국의 AMC사의 Jeep 라이센스가 없는 유럽의 몇몇 나라로
수출되기 까지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CJ 시리즈 이후 개발된 도시형 지프인
크라이슬러의 랭글러 시리즈가 유행하게 된다.


그런데..
지프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 기동해야 하는 요구 조건을 만족시켰던 차량이었던 만큼
도시 생활을 하는 평화로운 민간인들에게
그 다이내믹하고 파워풀한 기능들은 차고도 넘치는 것이었다.

신호등과 신호등 사이를 얌전히 왔다 갔다만 해야하는 도시에서의 운전은
도무지 답답하고 성에 차기 않았는데.. 그래서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강원도로 그리고 어디든
산으로 들로 강으로.. 길 비슷한 길.. 혹은 길아닌 길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었던 거이다. ㅋ

난 어렸을적 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군용 지프가 내 작은 놀이방이기도 했는데..
그 작고 장난감 같은 차가 창문과 문짝도 다 떼버린 채
전방의 산야를 이리 저리 뛰어 다닐때의 그 상쾌함과 개구장이스러움을
일찌기 부터 알아봤던 것이다.. ㅎ

그러한 연유로 집에서 운행하는 세단과 함께 나만 좋다고 타고 다니는 지프를 만들기 시작한거다..

지프를 첫 경험하게 되고 그 야생성을 좀 맛보게 되면
세단으로 다시 내려오는 일은 별로 없을거란 생각이다.
왜냐면.. 세단형 승용차는 아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 마구 흔들리는 것도 없고, 엔진소리도 거의 안들리고,
.. 문짝을 뗄수도 없고, 앞유리를 앞으로 젖히는 건 더더군다나..
.. 또.. 잘 넘어지거나 뒤집어 지지도 않고.. 바위를 타고 오르지도 못하고..
.. 잠수함처럼 물에 운전석이 다 잠겨서 갈 수도 없고..
.. 절벽 같은 경사를 시속 500미터의 속도로 안전하게 기어내려오지도 못하고.. ㅎㅎ

사람들이 보통 장점으로 꼽는 그런 점들이 지프를 타다보면 완전 그 반대가 되는 거다. ㅋ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 삼판도로와 군사 작전도로들이
온 산에 거미줄 처럼 나있었다.
그러던 것이 민둥산 시절을 벗어나 울창한 삼림이 형성되면서
밀림화 된 곳이 많이 형성되어 왔는데..
그러한 기존의 거의 반세기 넘게 통행이 없었던 산속의 길들을 찾아다니며
시작하게 된 취미가 오프로딩이었다.

어떤 길들은 수월하게.. 또 어떤 갈 수 없는 길들은 차를 밀고 당기면서
겨우 겨우 지나다니게 되는데..
그러면서 하나 하나 차량의 성능이 더해지면서..
가지 못할 곳이 없는 무지막지한 상태로 transform 된거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내 첫 지프였던 鐵驥.. 철기..

차체를 검은 색으로 직접 칠하고 지붕은 흰색으로 한 다음,
기본적인 shackle 튜닝을 통해 차체를 높히고 큰 타이어를 끼워 넣고, 쇽 업소버들을 보강하고,
스노클을 달고, 배터리도 듀얼로 해서 윈칭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고..
얼마나 정성을 많이 기울인 녀석이었는지..

HP 시절, 회사 동료들을 태우고 그저 포장 도로가 끝나는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들이 밀고 들러가 보던 시절..

저 당시는 장비에 대한 정보도 일천했고 또 구입가 또한 매우 고가였던 지라
기본적인 하이리프트 재킷 하나만으로도 든든했는데..
스턱 상황이 벌어지면 동료들 끼리 돌을 나르고 흙을 매우는 즐거운 노동 작업을 통해
팀웍이 다져지고 인간들 간에 끈끈함이 더해지고 하던 아주 좋았던 시절이었던 거다.

지금과 같이, 어느날 갑자기 돈으로 도배가 된 몬스터 오프 머신이
짠~ 하고 나타날 순 없는 것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지프 자체에 대한 열정을 못 이겨
최대한도의 가용 장비를 부착하고 최고 수준의 튜닝을 구가하는 것을
뭐라 나무랄 성격의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오프로딩을 추구하는 목적이 자연을 즐기고
좀 더 나아가 원시적 터프함을 지프라는 기계적 장비와 함께 자연 속에서 즐기고 싶은 욕망이라 할때,
너무 우수한 장비에 의존해 신발에 진흙 하나 묻히지 않고 고도의 하드코어 오프를 즐길 수 있다면
자연의 숨길을 느낄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이며
지프의 성능 자체에 대한 추구라는 경박함 밖에는 달리 그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비가 열악하던 시절의 삽질과 곡괭이질, 그리고 다이어트에 좋았던 바위 나르고 굴리기 등의
동호인들끼리의 팀웍을 통한 끈끈한 정을 나누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이때가 소위 한국의 오프로드 일세대 였다.
머드 클럽이나 천리안 오프 동호회 등 소수의 사람들이 코란도나 무소를 가지고
오프를 즐기기 시작했었는데, 당시는 튜닝 부품들의 애프터 마켓이 전혀 형성되지 않아
철공소에서 쇠를 깍고 다듬고해서 기본적 수준으로 프레임과 차체를 연결하는
Shackle 을 길게 함으로써 지상고를 높혀 오프 성능을 최소한 확보하는 수준 정도 였다.


두번째 지프였던 루니..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놈이다.
부품을 깍고 만들어 부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직접 하기도 했다.

처음 중고 지프를 구입했을때는 전혀 저런 모양이 아니다.
주저 앉은 모습이 애처러울 정도로 볼품이 없었는데..
모든 주요 부품을 험로 주행용, 산악용 혹은 바위타기(Rock Crawling)용 으로 교체를 하게 된다.

차체의 clearance.. 즉 지상고를 높이기 위해
차의 껍데기와 엔진이 올라가 있는 프레임 사이를 많이 띄우게 된다.
이때 부싱(bushing)이라는 강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봉으로 원하는 높이를 산정해 차체를 높힌다.

그러고 나선, 겹판 스프링(leaf spring) 혹은 코일 스프링을
높아진 높이에 맞고 더 강력한 장력(tension)인 것들로 교체를 한다.

그리고 쇼바라 부르는 Shock Absorber 들을 무지하게 긴 (long) 것들로 교체를 하게 된다.
이때 쇼바는 지형에 따라 강한 충격을 잘 흡수할 수 있는 딱딱한 흡수력을 갖게 하거나
포장 도로 주행에 필요하게끔 부드러운 흡수력을 갖게 끔
상황에 따라 조절될 수 있는(controllable) 쇼바를 장착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거치고 나면.. 바퀴가 들어가는 공간이 엄청나게 확보가 되고
이제 휠의 사이즈를 정하게 되는데..
보통 33 인치에서 36인치의 휠을 장착하게 된다. 물론 그 이상을 달아 몬스터 카를 만들기도 한다.

타이어는 용도에 따라 넓은 선택의 폭이 있는데..
내가 장착햇던 가장 막강했던 타이어는 Super Swamper/ TSL SX 였다.
나름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 타이어 한짝을 들기가 힘들 정도 였는데..
Rock Crawling 전용으로 타이어의 두께가 보통 타이어의 열배가 넘는다.. ㅎ


가장 무겁고 강력한 Hardcore Offroading 용 타이어인
수퍼 스웜퍼(Super Swamper0 TSL/SX 36 인치를 장착한 루니..

지상고가 높아지고 험로 주행을 위한 강력한 타이어가 준비되면서..
본격적인 오프로딩을 위한 주요 부품들이 장착되게 되는데...

그것들은 저속에서 높은 출력을 내게 해주기 위해 Differential Gear Ratio (디퍼런셜 기어비)를
적당한 것으로 바꾸는 것을 비롯해서, 길이가 더 길고 직경이 굵은 강력한 액슬로 교체하는 것,
그리고 바퀴가 헛도는 것을 방지하여 항상 모든 바퀴들을 돌게 해 주는 Locker의 장착등이 있다.

락커(Locker)의 필요성을 보면,
보통의 자동차들의 동력 배분은 부하가 덜 걸리는 쪽으로 걸리기 때문에,
차가 기울어져 어느 바퀴가 떠 있는 경우 그러한 허공에 뜬 부하가 덜 걸리는 바퀴만 돈다거나
한 쪽 바퀴가 바위에 심하게 끼어 었을 경우 정작 그 바퀴는 돌지 못하고
나머지 바퀴들만 헛 돌게 된다거나 하는 오프로딩에서 자주 발생되는 Stuck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Lock와 같은 강제 잠금 장치는
무조건 모든 바퀴를 돌게해 주어 어떤 상황에서도 차량이 굴러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곤 차량이 스스로 자신을 구난(self recovery)할 수 있게 하는
전동 윈치(Electric Winch) 장치와 하이 리프트 잭(High Lift Jack)등이 필요하다.

이는 차량이 전복되거나 거울어져 자력으로 상황을 헤쳐나오기 힘들 경우,
하이리프트 잭으로 1 미터 이상 차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전동 윈치의 wire를 주변의 바위나 큰 나무 등지에 걸고
차량을 끌어당겨 정상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다.

그외에 중요한 것이 차량 주변을 밝혀 주는 Lighting 시스템이 되겠다.
달빛이 없을 경우 아무런 인공 불빛이 없는 곳을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높은 산이나 계곡의 짙은 안개 속을 지날 때는,
강력한 서치 라이트 불빛이 아무리 많아도 넘치지 않는다.

갑자기 폭우로 유실된 절벽이 나타나기도 하고
칡흑 같은 밤길에 굴러내린 바위나 부서진 통나무들을
쉽게 발견하면서 진행하려면 차량의 앞, 뒤 그리고 옆을
대낮 같이 밝혀줄 라이트 들을 주렁 주렁 달아야 되는 것이다.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다소 요란 스럽고 유치하기 까지 한 랠리 등들이
심각한 오프로더들에게는 안전에 직결된 아주 중요한 장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곤 주로 서너대의 그룹으로 다니는 차량들 간의 소통을 위해 무전기를 달게 된다.


이후 코란도 시절을 마감하고 랭글러 시리즈로 돌아서게 되는데..
위의 사진은 세번째 이자 마지막 이었던 랭글러 사하라 버전이 되겠다.

랭글러 사하라는 4,000 cc 의 엔진으로 오픈 탑일 경우 차량이 매우 가벼워
그 파워는 거의 스포츠 카 수준으로 되는데, 사하라 특유의 엔진음이 좋았었다.

당시 오프로드 동호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오프로드 튜닝시장 규모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거의 모든 오프 관련 튜닝 부품들이 한국에서 구입 가능하게 되었고
내 마지막 랭글러는 소위 명품 오프로드 튜닝 부품들로 도배를 하게 된다.

- heavy duty Leaf Springs
- Lubicon Express inch-up kit
- 35" bf Goodrich/ MT tires
- Front Differential Locker
- Rear ARB Air Locker
- Rancho 5000 Shocks
- WARN 9500 Self Recovery Winch
- WARN heavy duty Bumper of slanted angle
- WARN heavy duty Gas Tank Cover
- WARN heavy duty Under Protector
- Hella Safari 100 W x 2
- IPF  Rally 100 W x 2
- Hella Search Light 100 W x 6
- Citizen Band Radio etc.

아래 글들은 오프로딩을 하면서 간혹 적어 놓은 글들인데
오프로딩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읽어 보기를 강하게 권하는 바이다. ㅋ


2000년 7월 29일

.. 맑음 그리고 우뢰와 천둥을 동반한 엄청난 소나기


지난 토요일 영등포 경찰서 사거리 금강 카센터에
엄지 손가락 만한 황금색 풍뎅이가 날아 들었다.

사십도가 훨씬 넘는 녹아버릴 듯한 아스팔트 위를 날아
그 많은 차량과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된 연기와 불순한 공기를 마다 않고
왜 그 고귀하고 화려한 풍뎅이가
나의 페인트 통 가장자리에 앉았을까....

난 당시 루니의 Roll Cage와 Side Step의 색을
진홍색으로 칠하고 있을 때였다.
왼손으로 든 페인트 통으로 붓을 적시려
오른손이 가는 순간
그 멋진 놈이 날아와 앉았다.

난 옆에서 무개(형님의 지프 별명: 초록과 빨강색의 무당 개구리)의 마무리 작업을 하던
형님에게 다가 가며 말했다.

.. 형, 자연이 나에게로 왔어...!  이것 봐요..
.. 자연이 네게로 왔다고? ..
.. 야...너 왜 그러니... (형님의 야유^,^)

그는 자연으로 부터 온 전령 이었을까?
그 Invitation to Nature를 받아들고 찾은 명지산에는
날 반기는 온갖 형태의 향연이 있었다.

새콤 달콤한 맛으로 초록과 빨강
그리고 노랑색을 두텁게 띈 채로..
사랑스럽고 화려한 벅찬 모습으로
자연이 내게로 왔다.

지난밤의 멋진 통나무 집 숙소에서도
그 자연의 전령은 내 어깨 위로 내려 앉았었다.



바베큐 그릴 속 장작의 마지막 불꽃을 바라보며
자정을 훨씬 넘어서 까지 담소를 나누던 우리 일행 중에서도
바로 내 어깨위에 또 다른 모습으로 살며시 앉았었다.

..  영건아, 네 어깨 위에 뭐가 앉았다.
..  어! 여치네..!
... ?... (형님)
..  형님! 이것 봐! 자연이 내게로 자꾸 오잖아!
..  쟤는.. (형님의 야유 ... :p )

...

다음날 아침 명지산 ...

성장할 때로 성장한 산에는
지난 초봄에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꽃들이 있었다.

아카시아 향기를 가진 연보라 꽃 향기는
나의 코를 돌아
운전석과 조수석 아래 자리를 한바퀴 돌고는
뒷 자석에 놓아둔 문짝과 배낭
그리고 Winch(차랑자체구난장치) Wire를 어루만지고서
하늘로 향해 피어 오른다.




나와 하늘 사이에 그 매혹적인 향기를 단절시키는 아무것도 없다.
루니가 지붕도 없고 문짝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루니의 노랑색보다 더 진노란색의 꽃이 있고
오렌지 주황색의 큰 패랭이 꽃잎 같은 꽃도 있다.
세번째 차는 두터운 오렌지 색이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당시의 형님.. ㅎ)


산길 좌우의 나무 덤불들과 가지들이
날 만지려 수 많은 손을 내민다.
산길가의 산딸기는 차를 잠시 멈추고
손을 내미니 바로 쥐어진다.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 후식으로 먹어야지.

융단느낌의 까만 제비꼬리 나비가
본니트 위를 하느적 거린다.

무개와 루니의 Roll Bar 기둥에 묶은 해먹위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지난 주는 버거운 한 주일 이었던 모양이다.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특이한 징후들도 나타 났었지.

그래 쉬어야지...

에어콘 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등을 감싸니 한기를 느낀다.
탁족을 위한 바위는 어떻게 그리 편평하고 내 궁둥이가 딱 들어 맞을까.

바다는 얼음 같은 계곡물에 온 몸을 다 적시고 있다.
악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몇 초간
그 신비스러운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팬티만 입은 그의 모습에 우리는 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킬킬거린다.
아...행복한 휴식이여...사나이들만의 시간이라니...

해먹에 누워 계곡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지나가며 언뜻 언뜻 푸르름도 비치고...

불같은 단풍이 타던 작년 가을
솜처럼 펑펑 눈이 날리던 제작년의 겨울.

벌써 몇년째 난 이 계곡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

다시 계곡을 거슬러 돌아 오는 길

탱크 만큼이나 웅장한 발진음을 가진 루니가 주행하는 바로 앞에서
가슴이 노란 산새가 뛰어 들어 종종 걸음을 친다.

사륜 1단으로 바위길을 서행하는 루니가 천천히 다가가면
저만치 쪼르륵 날아가 기다리고 또 날아가 기다리고...
그러기를 대 여섯 차례...

자연이 내게로 왔고
날 초대한 그들은 주인으로서 날 대접하는 것일까.

폭우로 험하게 파헤쳐 지고 심하게 경사진 모퉁이를 돌자
제비꼬리 나비들 십여 마리가 군무를 한다.
루니가 다가가도 비킬 생각도 하지 않는다.
루니를 멈춰 세우고 카메라를 든다.

본니트 하단을 배경으로 그들의 무리 춤이 앵글 안으로 들어 온다.
뒤따르던 형님은 영문을 모른채 경적을 살짝 누른다.

형님, 또 자연이 내게로 왔어요...
난 속으로 말한다.

무전기는 고장난 상태다.
강씨봉을 넘어 산허리 중턱 쯤 왔을까.
통째로 넘어진 소나무 사이를 겨우 빠져 나오는 장면을
바다는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후두둑 소리가 나며 주변이 어두워 진다.
새끼 손가락 굵기의 소나기가 삽시간에 쏟아진다.
번개가 번쩍이고 엄청난 천둥이 온 산을 진동 시킨다.
너무나 즐겁게 그 비를 맞으며 문짝을 단다.
창문도 달고 앞 뒤 호로도 씌운다.

향연의 피날레는 장엄했다.
자연은 그렇게 날 초대했고
나에게 베풀었으며
또 그 장중한 환송 행사로 그의 권위를 확인 시켰다.

* 첫 오프를 나온 형님은 무개의 파워에 완전히 정신이 나갔고
이제는 무개와의 호흡을 완전히 맞출 수 있다고 호언 장담했다.

형님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난 정말 즐거웠다...

...........................................







그 곳에 가기까지..


1. 만남

내가 鐵驥를 타고 다닐때 부터
무영 형님은 오프를 경험하고 싶어 하셨다.

3년이 지나 그 멋진 철기를 팔고
루니를 완성할 때까지 형님은 한번도 시간을 내시지 못했다.
사업상 주로 다른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실 수 밖에 없는 분 인지라
언젠가는 모실 수 있겠지..하는 마음이었다.

폭탄(박재국 기술사)은 요즘 무지하게 바쁘다.
서울대병원 증축 공사의 환경 시스템 감리 단장이라는 역할은
그에게서 오프의 기회를 거의 앗아가 버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바다 한창훈은 계속 고분 분투 중이었다.
돌박이 정민 돌보랴Offroad 사이트 운영하랴
그리고 나자빠져버린 빨간 빈티지 랜드크루져 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이렇게 전혀 판이한 삶의 모양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 만났다.


2. 그곳에 가기까지


아름다운 밤이었다.

유일하게 오픈 탑(Open Top) 이었던 루니속의 형님과 나는
속도를 더해감에 따라 휘몰아 치는 밤바람의 싸늘함이 더해 갈수록
우리안에 내재해 있던 개개의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움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어 갔다.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국도의 가로수 등불이 여위어져 가면서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이더욱 많아졌고
주변의 검푸른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대기는
우리를 이성과 가슴을 동시에 차갑고 뜨겁게 했다.

음절 하나 하나 마다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조수미의 아리아는
루니의 중후한 기계음과 잘 어울렸다.

내 젊었을적엔 난 아무도 필요하지 않았지...
when I was young.. I didn't need anyone..

Kings Singers의 아카펠라는 이제 오십이 훌쩍 넘어버린
형님과 내 마음에 아련하게 물결쳤다.



3. 아침가리골


세시간여의 On-road driving을 마치고
밤 10시경 비포장길로 접어들었고
분필가루 같은 흙먼지를 날리며 우리는 아침가리골 입구로 접어들었다.

구룡덕봉으로의 진입로는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있었고
시간상 시도해 볼 수가 없었다.
온통 숲이고 계곡이었다.
밀림은 예쁘게 숲의 터널이형성되어 있었고
열목어가 사는 계곡은 충분한 수량을 유지하며 우렁차게 흐르고 있었다.
디젤의 무지 막지한 소리와 진동은 벌레들의 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아니 그들을 혼비백산케 했다.

헤드라이트와 서치라이트의 불빛 역시
그들의 섬세한 감각기관을 아예 마비시켰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느닷없는 방문이
그들 시스템 전체를 흔들고 균형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도 우리와 공존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 그들을 섭취할 수 밖에 없는 포식자들의 chain이 형성되어
그 생태 시스템의 건강이 유지되듯,
간혹 찾아오는 우리와 같은 불청객들로 인해
그들은 더욱 강인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거시 생태계적 입장에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어떤 냄새를 풍기고 얼마만한 몸짓으로
또 어떤 주파수 대에서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공기를 울려 대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를 너무나 극우적으로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결국 인간이 혜택을 보자는 것일 것이다.
한마리의 벌레, 한포기의 풀 자체를 살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보존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자는 것인데.. 결국 인간 보호인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보다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을 말한다.

인간 우월 주의가 빗어낸 왜곡된 시대흐름인 것 같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가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룡이 그랬듯이 인간은 인간의 방식대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그러다 소멸되겠지. 공룡의 운명처럼 한 생물 개체의 생성과 소멸에는
분명한 사이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이 지구의 역사일 것이다..

이러한 쓰잘데 없는 정신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아침가리골이 주는 즐거움이라 생각하니흐믓했다.

1시간여의 숲길 오프로드가 무르익어 가면서
루니속에는 온갖 애벌래와 나뭇가지 형태의 가지벌레
그리고 송충이, 풍뎅이 들이구석 구석에서 조물거렸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와 아침가리의 오프를 함께했으나 인간의 존재를 알았고
인간이 어떠한 수단으로 공간을 빠르게 이동 하는지에 대해서도 느꼈을 것이다....

형님은 뭐라 형용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흥분된 감성을 감추지 않았고
우리는 산소 샤워로 말끔히 씾겨진 몸과 마음으로 우리의 숙소인 내린천으로 향했다.



4. 내린천에서 갑둔으로


내린천 강가에서는
바다 내외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목등심과 소세지 바베큐의푸짐한 저녁 식사가 있었고
황소가든 아줌마가 씻어다준 참나물의 싸한 향기가 좋았다.

바다의 12개월된 정민이는이미 꿈나라에 들어 있었다. .. 새벽 3시.


서치라이트가 비춰지는 듯한 강렬한 햇살에 눈을 뜬것은 이미 여덟시 반이 지나서 였고
황소가든의 맛있는 김치찌개로 아침 겸 점심을 든든하게 채운 후
우리는 소치분교 오프를 위해 갑둔으로 향했다..오전 11시.

짧은 국도를 벗어나 갑둔의 전술 훈련장으로 접어들자
목가적 풍경의 구릉지가 펼쳐졌고
유월답지 않은 따가운 햇살은형님과 나의 기분을 더없이 치솟게 했다.


5. M-48 전차와 병사들




우측 저지대 녹지에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눈에 스친다 싶더니
이내 전차와 병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로 오랫만에 보는 한국형 M-48 전차였다.
전차 회수차량의 호이스트에 의해 엔진이 통채로 풀밭으로 들려 나온채 정비중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코란도 만한 엔진이 전차의 등짝에서 꺼내어진채
이리저리 병사들에게 수술받고 있는 광경을.. 그것도 야전에서..

그 뒤에는 정말 잘 위장한 또 다른 전차가 포진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풀숲으로 생각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M-48은 정말 예쁘고 잘생긴 전차다.
이런 나의 표현을 전쟁광 쯤으로 여겨도 좋다.


하지만 그 강철 살상 무기의 쓰임새를 잠시 덮어두고 디자인만 바라보라.

섹시할 정도로 둥글고 매끄러운 포탑전차 운전병이 위치한
날카롭게 유선형을 이룬 하체의 전면
그리고 적당히 낮은 차체와 어디든 오르고 내릴수 있는 무한궤도와 강철 휠....
이 모든 상세 디자인 요소들로 인해 우리의 전차병들의 생환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비장한 아름다움은 어쩌면 남성으로서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일수도 있겠다.

장남감 세트장 같은 전차들을 배경으로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은 안되다고 손을 저어대는 병사들 역시 뒷 배경 삼아
우리는 짓궂게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

이후 우리는 여러대의 전차를 목격했고 또 바로 근접해 스치고 지나갔다.
압도적인 탱크의 발진음에 루니의 우렁찬 저음은 그저 귀여운 칭얼거림 정도로 묻혀 버렸다.

기계화 전술 훈련장이 되어버린 갑둔의 모습은
이렇게 한낮 뜨거운 햇살아래 펼쳐진 전차의 대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폐가 옆에서 잔뜩 웅크린 채로,
잘 구축된 진지속에서 떡 버티고 선채로,
개활지에서 나뭇가지로만 위장한채,
그리고 포탑을 뒤로한 채 후진하는 등등의 모습으로
그 잘 생긴 M-48 전차들은 우리를 무심하게 맞이하고 또 보내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뒤로 하고소치 분교 입구를 찾아
신남으로 넘어가는좁은 산 등어리를 넘어야 했다..



6. 콘크리이트 둔덕


바다는 자신의 6000cc 짜리 랜드크루져가 엔진 보수를 위해 대기중이라
다른 이의 구형 코란도 탑차를 빌려 타고 왔다.

루니와 바다의 탑차 이렇게 두대의 코란도는
이번 오프의 메인 메뉴인소치분교를 찾아 신남에 당도했다.

바다의 가족은 온가족이 오프로더다.
부인인 수미씨는 진입 포인트까지 코치할 정도이고
정민은 엄마 뱃속에서 부터오프를 즐겼다.
오늘도 그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돌박이 정민은 한번 우는 적이 없었다.

입구를 찾는데는 사십여분이나 소요되었다.

워낙 다들 아끼는 코스인지라 일부러 자주 찾지 않기 때문에
바다는 지도를 몇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진입로를 찾을 수 있었다.

계곡으로의 진입 후 편평한 바위를 몇번 타는 가 싶더니
그 유명한 콘크리이트로 된 수직 턱이 나타났다.

일전 라이더가 단독 오프시윈칭으로 오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와! 바다와 나는 환성을 지르며 차에서 뛰어 내렸다.
도데체 여길 어떻게 지난단 말인가?
난감한 빛이 역력한 형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진입각을 놓고 궁리하기 시작했고
바로 간단한 돌 작업을 마쳤다.

바다의 탑차는 스프링을 액슬 위에 올린 후
33인치 머드 타이어 만 장착한 기본 수준의 차량이었으나
바다의 노련한 주행 감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일차 시도에서 턱을 바로 치고 넘지 못해 돌더미가 조금 무너져 내렸고
바다의 탑타차는 원하는 진입각에서 우측으로 미끌어지면서
심한 트레드 먼지를 날리며 몸부림 쳤으나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형님과 나는 필요 부분에 돌을 메뀄고 몇번의 시도 보란듯이 턱을 넘었다.
다들 동시에 환성을 질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느끼는 짜릿함에 전율했다.



35인치 타이어와 5.86 감속기어 그리고 후륜 락커로 무장한 루니는
가속없이 가볍게 넘을 수 있었다. 굴렁 굴렁 하면서...
몇년전 까지만 해도 꿈에 불과했던 막강한 특수장치 덕분에
차량의 무리나 손상없이 그저 굴렁 굴렁 넘어갔다.

난 흐믓하기만 했고 싱겁게 끈난 상황에 형님은 사뭇 아쉬하는 듯 했다.


7. 간단한 야전 먹거리


밀림의 연속이었다.

어제 새벽의 아침가리골은 그야말로 서곡에 불과했다.
길이 끊긴지 수십년이 지난 곳이라 어렴풋한 진행로는 밀림 그 자체였다.

완전한 오픈카인 루니 속에서 형님과 나는 얼굴을 앞유리에 바짝 기댄 채
몸을 좌우로 이리저리 피하며거센 나뭇가지를 헤치며 전진했다.

복병은 위에도 있었다.

머리위로 밀고 들어오는 나뭇가지들에는 도리없이 머리와 얼굴이 긁힐 수 밖엔..
즐거울 따름인형님과 나...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형님은 연신 루니속으로 떨어지는 가지 벌레와애벌레, 송충이들을 떼어내느라
바쁘게 손을 놀렸고 그러다 이따금 Roll Cage에 둔중한 충격음을 내며 머리를 부딛쳤다.


형님의 IQ는 저하 되겠지만 EQ는 몰라보게 향상될 겁니다.
내 농담에 형님은 역시 즐거운 표정...

개울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구간에 다달았고 모두가 차에서 내려의견을 나눈다.

어디로 진입하고 어디로 꺽어야 하고 이 바위는 어느 바퀴로 타고 넘어야 하고..

바다가 이리저리 밀고 들어왔고 데후(differential Gear Box)가 몇번 긁히고
스프링이 바위에 얹히고 좌우측 바퀴가 두어번 허공에서 춤을 추는가 싶더니
어렵지 않게 개울을 거슬러 올라 건너편 기슭에 당도한다.



루니는 예의 그 굴렁 굴렁 모드로 쉽사리 개울을 거슬러 조그마한 모래 사구에 안착한다.

쉬어가기로 했고 커피가 먹고 싶었다.

난 예전에 하던대로 개울 주변에 잔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물을 끓이려 했으나
야전 취식 경험이 일천한 형님과 바다는 난색을 표시한다.

버너도 없고 물 끓일 코펠도 없는데 포기하자며...
아하, 산에선 안되는 일은 없어...

불을 피운뒤 바베큐 하는 형식으로 수통으로 물을 데우고
바다가 가지고 있던 C-레이션 비닐 봉지를 잘라 커피를 털어 넣고
데운 물을 넣어 흔드니 훌륭한 다방커피가 만들어 졌다.

철기 시절부터 가지고 다니던 깡통 햄을 뜯어
나뭇가지에 끼워 넣은 뒤 훈제 햄을 해 먹으니

별로 시장하지 않다던 바다 내외가 맛있게 해치워 버린다.

형님은 동족상잔이라며 애써 다이어트를 유지하셨고
우리는 오렌지 두알로 디저트 까지 마친 뒤 다시 소치의 마지막 이벤트 코스로 향했다.



8. 바다의 전복위기와 8274 윈치의 위용


다시 바위 구간과 밀림 구간을 어느 정도 진행했다 싶은 순간
앞서가던 바다가 심하게 우측으로 기울며 정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측이 심하게 경사진 곳을 통나무들로 임시방편으로 메꿔놓은 곳을
주의하지 않고 내 달린 것이었다.

언뜻 상황을 보니 HiLift로 우측 바디를 들어올리고
바위를 고인 뒤 탈출하면 상황이 해제 될듯 싶어
루니의 뒷 범퍼에 장착된42인치 하이리프트를 들고 와
거치할 포인트를 찾으러 했으나..
순정 상태의 코란도라 리프트 포인트가 없었다.

방법은 전륜 휠의 모서리에 사면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었으나
앞 범퍼가 바위에 얹혀진 상황이라 리프트업 될 경우
차가 더 기울며 우측으로 전복될 상황이었다.

결론은 윈치로 차를 앞에서 당겨 전복되지 않게 끔 장력을 유지 한채로
하이리프트로 어느 정도 우측을 들어 올린 후 바로 윈칭으로 탈출 시키자는 것이었다.

자 이제 8274의 위력을 보여 줄때가 왔구나!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그 긴 와이어를 풀어 내기 시작했다.

내게는 Warn에서 출시된 미끈한 스냇치 블럭은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철공소에서 제작한 무지막지한스 냇치 도르레가 있었다.

루니가 후미에 위치하고 7-8미터 앞의 큼지막한 나무를 삼각 윈칭의 중앙 점으로 하고
앞에서 기울어져 있는 바다차의 전면 쇄클에 견인바를 설치했다.


모두를 긴장된 순간이었다.
전복이냐 탈출이냐...!

바다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사인을 받자
난 브레이크 페달을 힘차게 밟음과 동시에 윈치 리모콘을 작동시켰고
바다의 탑차는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겨 졌다.

부하가 걸리지 않았을때의 속도가 Warn 9000의 거의 두배인 분당 22미터가 되므로
1차 탈출 후에 견인 와이어는 곧바로 팽팽한 장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재차 윈칭을 시도하여 바다 차는 안전한 지역으로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초초하게 지켜보던 형님과 수민씨는 박수와 환성으로
상황 종료를 알렸고 흥분한 바다는 차에서 뛰어내리 며외쳤다.

와! 무슨 윈치 힘이 저렇게 좋지!
와!와!...

한참 동안이나 우리는그 거대한 윈치를 칭찬했다.
그리고 촬영장비를 가지고 오지 않은 우리의 준비부족을 후회했다.

오프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는데...바다 왈..
아, 옵션이었는데 카메라도 안가지고 오다니...형님 왈..
낙동강이 있었으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좋아했을텐데...나 왈...

이후에도 바위와 진흙이 적당히우리를 즐겁혔고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그 아름답고 도전적이었던
소치분교 오프가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9. Epilog

올 장마가 지나면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아끼자...



............


화절령에도 봄이.. 

이른 아침
새벽 안개를 뚫고 올라선 그곳에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가 뿌려지고 있었고
장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맥을 온통 감싸는 안개는
태백 준령의 신령스러운 기운이었다.

우리는 하늘과 많이 가까이 있을 수 있었고
음모와 살기, 기만과 술수로 가득찬
인간시장에서 잠시나마 멀어질 수 있었다.

거의 일년 여 만에 나선오프 트레일 이었다.

나의 벗 폭탄과 오랜만에 함께 한 길이었기에
설레임과 흐믓함이 더했다.

영월을 거쳐 함백으로 올라
고냉지 채소밭을 지나
바로 화절령 루트가 시작되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있었고
버들 강아지와 연 초록 잎새가 피어 나오고 있었다.

흙 향기, 잎 향기... 온통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리케이드는 손상시키지 않았다.
뒤돌아 찾은 좌측 길은 통과가 가능 했다.

바위로 막아논 길을 누군가가 치워 놓았던 것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벼락을 맞아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나
또 누군가가 그때마다 솜씨 좋게 길을 터 놓았다.

아마도 이름모를 오프로더가
조용히 작업을 했으리라.

좌측 도어는 연신 나뭇가지와 몸 싸움을 한다.
천창의 호로는 쓰러진 고목의 사지에 긁히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앞서가는 폭탄의 탑차 천장은
나뭇가지와 방금 난 잎들이 소복히 떨어져 쌓여
마치 작은 정원같은 모양새를 하고 달린다.

삼판길 가운데에는 바퀴자국을 피해
샌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다.

향기, 소리, 색, 바람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는 우리의 속도..

너무나 아름답다...

폐 갱도의 아픈 상처를 지나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고사목을 지나
우리는 사북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다.

그곳 역시 바리케이드가 있었고
우리는 약간의 정리 작업을 한 후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으로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밟고 지날 수 밖에 없었다.

태백으로의 진행로가 확인되지 않아
사북 길이 아닌 쪽을 택해 진행하기로 했다.

얼마나 내려 왔을까.
기온은 아열대 수준으로 올라있었고
주변은 온통 초여름의 푸르름으로 가득찬
숲으로 변해 있었다.

폭탄의 환성이 무전을 통해 흘러 나온다.

.. 배꽃 좀 봐!

부시게 새하얀 돌배꽃이
백년은 넘었음직한 커다란 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주변의 경사진 메밀밭에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수도 없이 피어 있었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뭉게 구름이 둥실 솟아 있었다.



태백준령의 산자락 아래에는
그렇게 소담 스러우면서도 뜨겁게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곡 길에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주 찾기로 다짐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정겹던지
농부가 걸어가는 정도의 속도로 내려왔다.

마음이 깨끗해져감을 느꼈다.

작년까지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렸을
이제는 폐교되어 버린작은 산골학교를 지날땐
지난날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졌다.

소가 걸어가는 속도로 내려오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을 지나
우리가 가장 지겨워하는 미끈하게 뻣어있는 국도로 복귀했다.

우리나라는 이제가지 내가 사십년 넘게 경험하거나상상했던것 보다
훨씬 훨씬 더 아름답고 소중했다..

지상에서 하늘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둘러 보았던
그 많은 다른 나라의 어떤 곳보다 사랑스러웠다..


Cheers..



명지산에서..



계곡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돌의 크기가 갑자기 작아 지면서
여섯 번째의 계곡 물을 건너
우리는 지난 여름 거대한 폭우에 의해 할퀴어지고 파헤쳐진
바위 덩어리 계곡을 벗어나고 있었다.

계곡 입구를 화사하게 비추어 주었던 늦 가을의 햇살은
수백 미터의 계곡을 헤쳐오는 동안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철기는 옆구리의 갑옷이 찢겨나가고
뒷 바퀴의 충격 완충 장치가 떨어져 나가는 심각한 부상에도
그의 믿음직한 포효를 멈추지 않았다.

수풀과 흙으로 덮인 길로 접어들자
잔뜩 긴장 되었던 온 몸의 근육이 순식간에 이완 되었고
鐵騎도 갑작스러운 균형으로의 복귀에 놀라며 가쁜 숨을 골랐다.

한 과정을 소화한 후 느끼는 약간의 느긋함..

담배를 빼내 물며 거리낌 없이 엑셀을 밟는다.

나무줄기들이 차 창을 때려 대는 소리는여느 때 보다 좋았고
도열해 늘어서서 High Five로 환영하는 듯 했다.

그래 삶이 이렇지..
순기형(석창우 화백) 과 나는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되뇌었다.

험난함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있을 때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지 않는 정지와 퇴보의 고통.

포기한다는 것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작은 성취일 망정 이루어짐에는 항시 품위와 관록이 따랐고
어떤 형태로든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곳에는 기대 하지 않았던 만남이 있었다.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아쉬움으로 오르던 오뚜기 嶺 정상

어김없이 피어 오르던 짙은 밤 안개도
여름 내내 퍼 붓던 비도 없었다.

불나방들의 번잡함도 풀벌레 소리도 없었다.

다만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墨畵적 고즈넉함 속에서 저 만치 산자락 실루엣 아래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수 많은 별, 별, 별.. 별 무리..

휙…!  은하수를 베며 사라지는 별똥별

헤드라이트 와 서치라이트를 모두 껐다.
따뜻한 본니트에 누워 별자리를 찾았다.

중력이 미미해져 가면서
그 찬란한 공간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거의 그믐에 가까운 날이었고
사방이 어두움으로 浸潛 할수록 별들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의 경박한 영혼들은
어둠의 무게에 안겨 잠시의 평온을 찾았다.


...



길이 끝나고..
우리의 길이 시작되던 바로 그곳에서 만세~~ 를 부르던 피터.. :p



그럼 이만.. 

1 comment:

  1. 해운대님 차량을 여기서 또 보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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