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2011

해적들과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던 .. :p, Irish Pub Bloor W. Toronto Nov 2010



기네스를 주문하고선 화장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게된 이 장면 때문에
이 곳의 술맛이 제 맛보다 더 맛있고 걸쭉하게 느껴졌을 거다.

마치 의도적으로 쌓아논 듯한 저 화장실 문 앞의 포개진 술통 두개와
스패인을 연상시키는 붉은 칠의 문, 노란색으로 코팅된 과장된 백열등 불빛,
그리고 난파선 분위기로 나름 빈티지 풍으로 회칠된 벽, 바로 이런 분위기가 술맛을 제대로 자극했던 것인데..



바 카운터에 앉아 깨끗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관리되고 있는 생맥주 따르는 손잡이
tap handle 들을 보는 기분은 언제나 느긋하다. 


이곳에서는 생맥주를 draft(draught) beer 로 부르기도 하지만통상적으로 저 꼭지를 통해 따르는 것 때문에 tap beer 혹은 beer-on-tap 이라 부른다.

다 맛있을 것 같은 저 생맥주들 중 오늘은 뭘 골라 마실까.. 하며 잠시 입맛을 다시며 생각하는 순간은
달콤한 것도, 게걸스러운 것도, 고통스러운것도, 외로운 것도, 안달나는 것도, 짜증나는 것도,
뭐 그렇다고 우아하거나 엄청 신나는 것도 아닌.. 그저 느긋한 거다. 우히~ 

그러고 나서 술을 기다리는 동안 느긋한 심정으로 이 술집은 어느 공간이 매력적인가 하며
술집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과 구석 구석의 공간을 천천히 훓어보게 되는 것이다.



100년, 150년을 넘어 이제 200년이 다 되었거나 이미 넘었거나 하고 있는 블루어(Bloor) 거리. 

한국의 이씨조선 후반, 대원군 시절 즈음해서 형성되어 토론토 중심부를 지나며 
동서로 뻗은 이곳 블루어 거리 서쪽,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High Park 옆에 위치한 이곳은 
아마 그 옛날부터 이런 아이리쉬 주막집으로 이어져 내려 오고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니 이 또한 이곳의 술맛을 괜히 더 진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된다.




주모는 내 카메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자꾸 카메라가 뭐냐고 물어대는 그녀에게 일갈 했다.

..  카메라는 별 큰 차이가 아닌 것 같고 세상을,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더 성숙하게 갖춰야 되는 게지.

.. Camera doesn't REALLY mean anything. 
   I would rather say that try harder to sharpen your eyes first of all..  :p

몇번을 완곡하게 이야기 했지만, 
이 고집스런 주모 아주머니는 계속 내 카메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난 속으로 말한다..
.. 근데 그 소프트웨어 즉,사물에 대한 당신만의 견해.. 를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라오..


사람들은 보통 이러한 관심을 보이며 장비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 나도 카메라만 좋으면, 이 정도 렌즈는 가져야지 뭐가 찍히지.. 라며..

하지만 뭐든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다면 그 값비싼 장비들이 무슨 소용이람..

허긴 장비 자체에 대한 만족감 과 허영심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는 부류도 있긴 할 것이다. ㅎ


양귀비 꽃을 모티브로 한 현충일 꽃..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한 너른 들에 이듬해 엔가 아름다운 양귀비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고 해서 양귀비 꽃을 말하는 Poppy는 현충일이 다가오면서 
거의 모든 캐나다 국민들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꽃이 되었고 나도 올해부터는 이 퍼피를 가슴에 달았다.


서서 술을 마신다는 의미의 선술집..
아이리쉬 주막은 보통 의자가 없이 여럿이 담소하며 서서 마실 수 있게 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좁은 공간의 이 곳은 그저 좀 높은 stool 몇개를 가져다 놓았다.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의자.. 한 사람이 겨우 몸을 걸칠 수 있는 작은 의자의 모습이 정겹다.


출출한 참에 시킨 그릴에 구운 송아지 소세지.. 마침 양이 많아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걸쭉한 kidney bean, 으깬 감자 그리고 소세지 세개를 싹싹 다 먹어치웠다.

주방에서 가끔 얼굴을 내미는 중국 출신 혹은 홍콩 출신의 주방장 솜씨가 좋아 
송아지 소시지 맛이 훌륭했다.


계속 속으로.. 음.. 훌륭해.. 훌륭한 맛이야.. 하며 먹었다. ㅎ



담배를 피기위해 또 내가 오늘 원래 가려고 했던 옆집 Latinada가 문을 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온 patio..


여기서도 이 오래된 듯한 혹은 실제로 오래되었을 수 있는 술집의 독특한 취향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유리창이 스테인드 그라스로 되어 있다는 것과, 오래 된듯한 함석판으로 만든 등이었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예전 암스텔담에서 올라 타본 옛 범선의 선장실을 바깥에서 보는 느낌이었는데,
희미한 불빛과 오래되어 뿌연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해적선의 분위기가 슬슬 나기 시작한거다..



마침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보니.. 
역시 고풍스럽고 개방적인 폰트에 검은 천에 흰 글씨로 쓰여있었는데..

Jolly Rogers.. 해적 깃발이 바로 떠올랐다. 낄...

그리고 그 옆엔 마차 바퀴인지 해적선의 키 인지가 또 걸려 있었고.. ㅎ


그런데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날 보고 하는 말..
캐시(? 주모의 이름 인듯)가 네 카메라에 엄청 눈독 들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며 빙긋 웃으며 간다.

오호.. 이거 완전 해적 분위기 맞네..!! ㅎㅎ

전혀 낯 모르는 사람의 그럴듯한 농담을 들으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니
이 또한 술맛이 또 더욱 좋아지는 효과로 이어졌는데..

사실은 술이 술을 부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기네스 세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유혹을 뿌리치며 벌썩 일어서며 난 생각했다.

.. 진짜 해적은 따로 있었던 거다.. 술, 너!  네가 해적이었잖아!  ㅎ


한국에선 두주불사하던 주량이 밤문화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 날로 건전한 일상에만 정진하다 보니
이젠 서너 잔만 마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젠 거의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두 모금 마시게 하며 
아내와 함께 집에서 즐기는 술이 훨씬 맛있다.

오늘도 술이라는 해적에게서 노략질 당하지 않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피터..
잘했다 피터.. 계속 쭈욱 정진하길 바란다.. 피터.. ㅎ



by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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