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2012

북조선 평양냉면, 호치민 시티 (사이공) Vietnam Jan 13 2006

그녀들은 모두 평양의 귀한 자식들로 당 간부나 교수등 권력 혹은 지식층의 자제들이었다.
소위 북한 외화벌이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긍지와 자부심까지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아리땁고 건강한 청춘들이 그들의 한심하기 그지없는 조국의 부름을 받아
식당의 웨이트리스라는 우리로서는 기가 막힌 험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측은하고 애틋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하지만, 과거 우리의 부모세대들 역시 광부나 간호원으로 모진 삶의 현장에서 외화를 벌어들였었고
현재 수백만의 중국 노동자들이나 수십만의 베트남 일꾼들이 전 세계 곳곳의 험한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뛰고 있고, 필리핀의 수많은 부녀자들 역시
보모 혹은 식당 종업원이라는 직업으로 세계에 흩어져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는 지구촌 현실을 볼때..
초라하지만 그들에게 그나마 일을 할 수 있고, 넓은 세계를 보게해 준 그들 국가에게
그들 자신들은 어찌되었든 감사해야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쨓든 많은 관광객, 특히 돈 많다고 떠들어대는 한국의 졸부 관광객들이 득실대는
이곳 식당에서 근무하면서 그들 역시 왜 모르겠는가.. 너무나 초라한 그들의 세계를..

하지만 내가 잊을 수 없었던 것은..
한 젊은이로서의 초롱 초롱한 눈 망울과 어쨓든 자신이 태어난 조국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진 청년으로서의 생기 발랄한 아름다움.. 그것이었다.

아무리 절대적으로 열악하고, 자유란 단어는 정의 조차 내리지 못하는 
또 숫하게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갔고 또 죽어가는 엄연한 현실앞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젊은이로서의 체질적 특권을 난 잊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아리따운 처녀는 부모가 모두 평양에 거주하며
부친이 수학 교수라 했다. 본인도 수학을 전공하고 있고 교수가 되는게 꿈이라고..

어찌나 품행이 우아하고 예의바르던지.. 엄청 새침떼기기도 했다..

 "그렇게 절 가지구 놀리시면 안됩네다... 선생님!"

하며 눈꼬리를 치뜨며 웃을 땐.. 속으로.. 와! 정말 이쁘다.. 하기도 했다 .






호치민시티 (aka 사이공)에는 당시 내가 잠시 근무하던 한국 회사의 공장들이 많았다.
연초 서울 본사에서의 미주, 중남미 및 아시아 지역 전체 법인장 회의를 마치고
모든 법인장들과 난 이곳 공장 시찰 겸 내가 추진하고 있었던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communication 차원의 방문을 하고 있었는데..

베트남 법인장의 안내로 방문 몇일 째 되는 날의 점심 식사를 위해
북한에서 직영하는 이곳 대동강평양식당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제공하는 메뉴의 모든것들을 주문했고..
말로만 듣던 평양랭면과 비빔랭면, 백김치, 평양순대, 평양만두, 부침..
그리고 평양소주가 함께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종업원 중 한 사람이 그림 이야기를 했다.
북한의 공훈 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구입할 의향이 없으시냐며..
알고보니, 이 곳의 이층은 따로 갤러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림 판매가 꽤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다. 한국관광객들과 교포, 그리고 일본 방문객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리 저리 그림을 살펴보던 난 깜짝 놀랐는데..
김기만 화백..즉 우리나라의 독보적 화가 운보 김 기창 화백의 동생이 그린 동양화들이 있었다.
얼마전 보도를 통해 그가 북한에서도 공훈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내가 놀라며 설명을 하자,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인 뉴욕 법인장이
마침 그림 수집이 취미 였고 세점을 천오백불 인가를 주고 구입했다.
 
이젠 다들 그리운 얼굴들이 되 버린 친구들..
나도 회사를 떠났고, 몇몇은 다른 회사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니카라구아 법인장, 온두라스 염색공장 법인장, 뉴욕 판매 법인장, 베트남 법인장..
다들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었는데..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살던 다들 멋지게 살고 있겠지?






그런데.. 이곳 평양대동강 식당을 2007년 말경에 다시 찾게 되는데..

동생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베트남 관련 비지니스 탐색 차 잠시 들러서
이곳 모은행 지점장 등과 골프를 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놀란 것은 식당의 규모가 한 열배 쯤은 커져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동네 식당같던 가족적 분위기는 다 사라지고, 연회장 같이 넓은 홀엔 원형 테이블들이 가득하고
전면엔 무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식사 도중 무대에선 공연이 열리고..
전에 봤던 그 어여쁜 처자인 것 같은 홀 서빙 요원들은 아직 근무를 하는 것 같았는데
당시 보다는 매우 사무적으로 변모해 있는것 같아 인사를 나눌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음식은 여전 했으나, 이전과 같은 호기심과 흥겨움이 전혀 생기지 않아..
그저 먹는둥 마는 둥 하고 나오고 말았는데.. 괜히 기분이 씁쓸했다..

어쨓든.. 이제 그 맛은 다 잊었지만..
그 맛을 알게 해준 사람들과 그 맛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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