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여름 날,
돈 강을 산책하면서 강 주변의 풀들과 야생화들을 보며 걸어 가는데
느닷없는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꺼억.. 꺼억..
소리는 계곡 쪽에서 빠르게 이어졌는데..
후다닥 계곡으로 뛰어 내려가니
바로 앞에서 갈매기 한마리가 괴로운 소리를 지르며 날아 도망가고 있었다.
마침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어서, 소위 Point-and-Shoot 을 시도하며
연사 모드의 셔터를 계속 눌렀다.
상황이 수초 만에 종료된 후 사진을 확인해 보니..
주먹 만한 텃세 두마리가 갈매기를 공격하며 쫒아내고 있었는데
한마리는 갈매기의 등에 올라 발톱으로 잔뜩 녀석을 움겨 쥐고는 부리로 쪼고 있었고
다른 한마리 역시 무시 무시한 표정으로 갈매기를 바짝 뒤 쫒고 있었던 거다.
그 소리는 결국 갈매기의 비명 소리였고
난 생생한 생존 경쟁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거였다.
한 곳에 고착하여 살아가는 풀과 나무들이 피우는
현란한 모양과 색조 그리고 상쾌한 향기의 꽃들을 보면
자연은 그저 평화롭기 그지 없어 보이고
마치 인간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기쁨조와 같은 역할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잠시 멈추고 그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관찰하게 되면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사실, 인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양태의 삶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지 모른다.
죽고 죽이고, 더 가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태연히 빼앗기도 하고
먹이를 기만하기 위해서나 포식자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
온갖 위장술과 달콤한 향기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며
생태계의 일부분으로서 생명을 이어간다.
치열함이 아름답다 하면, 아름다운 거다.
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한다는 것이 치열한 것이면, 그 또한 아름답다.
내 영역에 침입한 저 괴물을 어떻게든 쫒아 내지 못하면 난 당장 곤란에 빠질 것이니
난 죽기로 지금 싸워야 한다.
공존? .. 난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또 알 필요도 없다.
텃새의 논리다.
정말.. 텃새는 공존을 거부한 것일까?
좁은 의미에서는 그럴 것 같다.
텃새가 자리 잡고 살아오는 이 곳 돈강 어디 쯤의 일정 공간에 국한하여..
사실, 만일 텃새가 저렇게 맹렬하게 공격을 가해도 사납기로 소문난 갈매기를 쫒아내지 못할 경우,
우리는 소위 텃새라 불리는 강하고 작은 로컬 조류들을 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지역에 구애됨없이 어디나 날아 갈 수 있는 튼튼한 날개와 크고도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갈매기와 같은 극성스럽고 게걸스러운 새들만 본다는 건 상상하기 싫다.
생태계의 균형.. 즉 공존을 위해서는
강변의 소박한 공간만을 차지하고 사는 저 작은 새들이
악착같이 포식자들을 물리쳐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뜨거운 한낮에 벌어진 생존 경쟁의 현장..
주먹만한 텃세들의 강단에 놀라면서 동시에 저 덩치에 맥없이 쫒겨 달아나는 갈매기도 우습다.
사진 찍기를 즐겨해 어딜 가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러한 운좋은 사진을 담을 때가 있다.
이런 장면은 잠복을 하며 기다린다고 포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