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2011

유쾌한 병사 슈베이크.. The Good Soldier Švejk, Jaroslav Hašek 1923



아들 아이가 느닷없이 탐 클랜시의 잠수함 소설 'Red October' (The Hunt for Red October)를
읽겠다고 했고 녀석은 토론토 시내의 서점 'The World Largest Book Store' 에 재고가 있음을
알아 보고는 내게 사다 달라 했다.

1980년도에 쓰여진 탐 클랜시의 그 유명 소설은 이미 고전이 되어 일반 서점들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녀석이 사다 달라는 하드 커버의 양장본은 없었지만 페이퍼백을 발견해서 집어 들고는
이곳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 의 책들을 둘러 보는데..

오래전 익숙했던 그림의 표지와 함께 이 추억의 책이 내 눈에 띄었다.

아..이럴수가~~ !!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도 전인 아주 어렸을 적,
집에는 어머니가 즐겁게 보셨다는 독특한 표지의 책이 있었는데..

삽화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깨알같은 글자만 가득한 보통의 문학책들과는 달리
이책은 표지 부터 아주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챕터 마다 한 두 컷의 단순하면서도 매우 인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첨가되어 있었던 거다.

.. 유쾌한 병사 슈베이크..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함께
이 책의 장정에 대한 인상 깊었던 기억, 재미있었던 삽화들,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병사 슈베이크의 우스꽝스럽지만 순수한 말과 행동들..

그래서 아주 가끔 이 책이 생각났었고,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책이 내 눈이 띈거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이책을 집어든 유래를 설명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들이 당시 지배층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유머,마음이 아려오는 익살로 엮어지는 터라
큰 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는 아빠가 다 읽고 나면 읽겠다 했다.

요즘 신화학(mythology) 강의를 듣느라 일리아드 와 오딧세이를 읽고는 매우 흥미있어 하는 딸 아이가
가능한 많은 종류의 인문 서적을 읽기 보기를 바라는 마음인거다.


체코 작가 야로스라브 하셱의 1923년 미완성 유고작인 유쾌한 병사 슈베이크는
자그마치 천사백만명의 전사자를 낸 일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슈베이크라는 지극히 선량하지만 지능이 많이 모자라게  묘사되는 한 시민을 통해 에피소드 형태로 그리고 있다.

당시 제국주의 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일어나는 군, 경찰, 법원, 군 의료진 및 비밀 경찰등
권력 기관들과 그 하수 기관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회통제 방식과 부패상이 적나라 하게 묘사된다.

군 의료진에게서 '제대로 인증받은 멍청이' (certified idiot) 인 개 장수 슈베이크가
곡절 끝에 병사로 다시 군에 입대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한편으로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킬킬 거리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황이 내게 정말 일어난 다면 난 어떻게 처신하게 될까..?
라고 자문하게도 되고, 슈베이크의 지극한 고지식함에 아련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황제의 초상화에 자꾸 파리똥이 슬어 지저분해 지자
맥주집 주인 이자 슈베이크의 친구인 팔리벡은 다락방 창고로 초상화를 치워버리는데..
이 사실을 유도 심문으로 알아낸 손님을 가장한 비밀경찰 브렛슈나이더는
그를 반역죄(treason)로 체포하고 법원은 팔리벡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 시민을 징집을 피하기 위한 꾀병이라고 판정하고
말을 할때까지 위세척과 관장을 반복하는 고문을 해댄다.

뭐 이런 식인데..

또한 당시 제국주의 시절 권력기관들의 터무니 없는 방자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무능력,
개인에 대한 감시와 사찰 그리고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는 포학상들을 보면서 치를 떨게 되기도 한다.

제국주의 나 군국주의 형태의 전횡적 국가 형태에서
현재와 같은 자유민주국가로의 발전은 채 100년 도 되지 않는 것인데
우리의 할아버지들을 포함한 이전 세대들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동의 대부분의 국가들이나
그보다 더한 아프리카의 국가들 그리고 말할것 없이 최악인 북한은
사실 저 당시 슈베이크와 그의 동료들이 겪었던 고초보다 더욱 잔혹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국가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수탈되고 황폐화되고 마구잡이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언급되지만,개인에게서 '생각의 자유' 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지만 그 생각의 자유 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나라가 아직도 많은 것이다.
사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슈베이크 시대 만큼이나 사복 비밀 경찰들이 어디에나 깔려 있었고,
저 시대에 황제를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대통령을 비롯한 체제 비판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다 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살고, 급기야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삼청교육대라는 전대 미문의 강제 갱생 수용소까지 존재했었던 한국.. 불과 수십년 전이다.

그 수가 날로 늘어나는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는
수천만 반체제 소련인들을 죽음으로 내 몬 스탈린의 시베리아 수용소 들보다
더욱 반인륜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상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캠퍼스 내에 학생수보다 사복 경찰들 소위 짭새들의 머릿수가 더 많았던 학창시절..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여기도 저기도 데모와 관련해 마포 경찰서에 조서를 쓰며
얼굴을 마주했던 형사들이라 서로 계면쩍게 쓴 웃음을 짓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면서
그러한 억압된 공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 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소위 열사라고 불리우는 당시의 민주화 학도들은 제 목숨을 바쳐 정의의 이루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유쾌한 병사 슈베이크는 이러한 포악한 권력과
그 권력을 야비하게 휘두르는 힘 있는 자들에 대한 대처가 여느 인간들 하고는 아주 달랐다.

이 인간이 진짜 모자라는 반푼이라서 이런 말을 지껄이는 건지..
아님 고도의 비아냥이 깔린 수사학의 대가 라서 이러는 건지..

독자인 나 역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고개가 갸우뚱 하면서 읽게 된다. ㅎ



첵코에서는 슈베이크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동상이 세워지고 우표가 발행되고, 티 셔츠에 그의 얼굴이 찍히고 그가 다녔던 단골 술집엔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한 사람의 정직하고 착한 바보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정치, 사회체제 상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이끌어 냈던 이 체코의 문학 작품은
저자 死後 삽화가들에 의한 독특한 삽화들과 함께 출간되어
사회 풍자 문학의 큰 족적을 남기며 유럽을 넘어 한국에 까지 소개되고 있었던 거다.



talk to you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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