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중서부의 우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따가운 햇살 아래의 경제 중심지 뭄바이..
그 거대 도시의 거대 중앙역인 챠트라파티 쉬바지 역(CST: Chhaatrapati Shivaji Terminus)에서
난 그들 매일 매일의 일상적 손때와 내음이 한껏 묻어나는 통근 열차를 타보며 웬지 낯설지 않은 친근감에 빠져들게 되는데..
아주 오래전 부터 운행되어 오고 있는 이곳의 열차들의 낡고 기계적(디지털적임의 반대 의미로)인 시스템은
지저분함이나 불편함과는 좀 다른, 오히려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분히 살아있는 채로
빈티지 풍으로서의 낭만과 따뜻함 그리고 아주 인간적인 향취로 내게 남아 있다.
몇 년 후 이곳 토론토 다운타운의 극장에서 접하게 된 대니 보일의 Slumdog Millionaire의 마지막 장면 역시,
2006년 이곳에서 촬영되었음을 보고 뭄바이 CST 중앙역에 대한 애착을 더 크게 갖게 된다.
뭄바이 경제를 움직이는 수 많은 엘리트 젊은이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한 옷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낡지만 아직도 잘 달려주는 열차를 타고 매일 매일 그들의 일터로 가고 또 집으로 돌아온다..
또 인도만의 진기한 광경인 도시락 배달을 위한 수 많은 점심 도시락 밥통들 역시 이 열차들에 의해 실려 오가고 있다.
난 내 직업 상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과 일을 해 본 경험이 많았는데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및 정보통신 업계에서 두각들 나타내는 인도 출신의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한 국가를 위한 정보통신기술 자문역에서부터, 프로젝트 매니져,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에 까지 다양한 직급과 역할의 친구들과 함께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들 인도 출신들은 디지털 세계의 최 전방에서 일을 하면서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감성적-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요구하는 경쟁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내가 HP 에서 일할때의 프로젝트 팀원의 하나였던 한 인도 친구는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의 hp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매우 스마트한 중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였는데,
휴가때면 인도의 고향을 다녀오곤 했다.
그런데 비행기로 덴버에서 17 시간 정도 걸려 인도로 날아가,
그의 마을까지 꼬박 1박 2일 정도를 온 갖 교통 수단을 이용해 가야 했다.
그러면 그의 마을에선 금의환양한 그를 위해 마을 잔치가 벌어지고..
머리로는 세계 최대의 첨단 정보통신 회사에서 자국에서보다 수백배가 넘는 월급을 받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앞서가고 편리한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지만,
가슴은 아직 인도의 비 포장 길을 달리고 달려, 첨단 문명의 혜택은 거의 없지만
서로에 대한 베품과 인정으로 사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 공동체와 그 가족에 대한 정서가 가득한,
소위 디지로그 전사였던 그의 경쟁력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휴가를 다녀왔을때 간혹 묻곤 했다.
.. 잘 다녀왔어? 마을 파티는 어땧고?
그러면 그는 수줍은 표정으로 너무 시간이 걸렸다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면서도
아주 좋았다고 대답 하곤 했고, 다음 휴가때 그 먼길을 또 갈거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한 이유로, 디지털 기술 천하를 리드해 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인재들이 요구되는 작금의 현실들을 보면 인도의 젊은 인재들이 자꾸 떠 오르게 된다.
아직도 그 넓은 땅덩어리의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은 후진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유수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업과 금융기업들의 CEO 자리에 이미 많이 올라 있고,
아시아의 맹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인도인들의 엄청난 국가적 동력을 볼 때
북미나 중국, 혹은 러시아 와는 다른 인도 대륙만의 특유의 경쟁력에 대한 생각에 미치게 된다.
사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란 영화를 보며,
아직 공권력에 의한 고문이 횡행하고, 사회적 부조리가 판을 치며, 민족 간 종교간 증오가 극에 달하는,
그래서 아직도 후진성을 전혀 면치 못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별 수 없는 나라 이겠거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인도 영화 사상 초유로 오스카를 죄다 휩쓸어 갔지만
그 영화가 인도의 부조리한 현실을 너무나 잘 반영해서라기 보다는,
또 감독의 너무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다기 보다는..
거대 자본이 절실히 요구되는 헐리우드가 인도 에 보내는 절절한 러브콜 이었을 수 있다.
엄청난 자본을 수혈받은 스필버그는 아예 인도에 죽치고 살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영국 표준을 따라서인지 광궤의 열차는 내부 공간이 꽤 넓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란 물성 개념 조차 없을 때 제작된 객차는
모든 부품들이 쇠로 이루어져 있고 덧칠된 페인트가 벗겨진 지지대와 들 반들한 손잡이들이 웬지 정겨웠다.
아마도 나의 중고교 시절에 이용하던 시내 버스들 생각이 나서였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저 손잡이 하나 하나에 묻어나..
내 이야기 먼저 들어 달라며 대롱 거리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빠 혹은 할아버지 정도의 어른과 동행하는 듯 한 사리입은 고운 소녀의 무릎에 아침 햇살이 마구 쏟아져 들어와..
자못 성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겼다. ㅎ
작은 Ceiling Fan들이 간혹 천장에서 돌아가긴 하지만 여름 인도의 더위를 식힐 순 없는 법.
해서 열차의 거든 모든 문들이 열린 채 운행된다. 그 개방성이라니.. ㅎㅎ
어디 경비원 혹은 군인 쯤 되보이는 이의 제복 입은 뒷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이자 물류 항구 도시인 뭄바이는 그 긍정적 역동성 만큼이나
아시아 최대의 슬럼가와 사창가, 인신매매등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영화에서처럼 우연한 기억의 연속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코미디같은 영화속 스토리가 아닌
제대로 된 열정과 노력으로 불가촉천민 등의 관습적 신분을 훌쩍 뛰어넘은 많은 인도인들이
자국 및 전 세계를 무대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넘어 빌리어네어(billionaire)로 하나 하나 탄생하고 있기도 하다.
Gate of India 사이로 보이는 Taji 호텔의 아름다운 모습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인도의 이국적 매력을 잠시 엿볼 수 있게 하는데..
작년 뭄바이테러의 주 공격 목표가 되었던 타지 호텔이 화염에 휩싸였던 모습은 매우 안타까웠으나 총흔 자국들을 오히려 관광 포인트로 만들어 영업에 나서는 인도인들의 비지니스적 순발력에 다시금 혀를 내두를 뿐이다.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