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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2013

결정론적 混沌 (Deterministic Chaos) .. 그리고 안전한 사회

태초의 神 캐이오스, 카오스(Chaos)란 이름은
동양으로 넘어와 혼돈(混沌)이라는 매력적 신화의 존재로 매치된다.

얼굴에 눈코귀입이 없었던.. 그래서 인위성이 없고 항상 중립적이었던, 가운데 나라 임금 혼돈은
남쪽 임금과 북쪽 임금이 선물이랍시고 얼굴에 뚫어준 일곱개의 구멍이 뚫리는 칠일 째 죽고 만다.
혼돈은 죽고 대신 남북의 우두머리들에 의해 천지가 창조된다.

뭐 이런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LG의 카오스 세탁기는 나름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강한 세탁력과 빨래의 엉김을 줄여
단숨에 마킷 1위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세탁기의 주 회전봉 주변에 랜덤하기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세탁기내 물살의 흐름 조건을 제멋대로 바꿔주는 작은 물체를 설치했던 것이다.

혼돈 이론이 가지는 정의 자체는 명쾌하고 단순하다..
이론이 다루는 무한한 복잡도를 가진 시스템에 비하면.. ㅎ

시스템의 초기 조건이 아주 미미 하게 바뀌기만 해도
그로 인한 시간이 지남에 따른 변화는 엄청나게 커지는 시스템.

랜덤한 노이즈 처럼 보이는 단기간의 데이타들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는 시스템.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레이져 광학이 응용 물리학으로 태동되던 1980대 초에
카오스 이론으로 직접 제작해 만든 레이져를 이용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는데..
지금 한국의 아리랑 위성의 눈인 광학탑재체를 책임지고 있는 이승훈 박사가 되겠다.

그때 했던 말들이..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런 이야기 였던 것 같다.

.. 젠장.. 이거 패턴이 보여야 하는 데 잡아내기가 쉽지 않네..

.. 카이오스가 그 자체로 무질서 한건데.. 거기서 질서를 찾아 낸다고?? 재밌겠군!

.. 응.. 이게 무질서한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이 형성되고
   그 위상(phase) 일치하는 파동들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면서
   Laser 란 강력한 빛을 만들어 내게 되는 거지.. ㅎ


내 벗은 자연의 혼돈 현상을 이용해 새로운 레이져를 만들어 냈고,
난 기존의 상업 레이져들을 이용해 비파괴 검사를 위한 연구를 했었었다.

난 그 보잘것 없는 석사논문으로 내 짧은 Academic Career를 마감했지만
이 박사는 계속 그 혼돈의 세계에서 치고 받고 싸우기를 거듭..
기어코 혼돈을 길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ㅎ


좌간.. 갑자기 혼돈 이론이 머리에 떠오른 건
내가 사는 평화로운 거리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였다.

굳이 카오스 이론이 적용되어야 되는 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나
내 머리에 그 혼돈.. 훈둔..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는 건 적어도 내게는 중요한 것이다..



.. 한 인간이 아침에 어떻게 기분 좋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느냐..

.. 어느 누구의 자손으로 어느 시절 어느 공간에 태어나 첫 울음을 힘차게 우느냐..

..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사를 나누며 관계를 시작해 가느냐..

..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 어떤 다짐과 결심으로 한해를 시작해 가는 가..



지극히 개인적 인과 관계(chain reaction)의 시작에 있어서의 초기 조건이 매우 중요하듯
혼돈(chaos) 이론은 초기의 시작 조건에 매우 민감한 역동적 시스템의 행태를 다룬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잘 다져진 문화와 관습이 뒷받침 되면서
일상 생활을 규정하는 사회 규범이 잘 정의되고 교육되어 지켜지는 경우
우리는 이를 편안한 사회, 성숙한 사회라 칭할 수 있겠고
예측 가능한 세계라 단순화 시켜 볼 수 있겠으나, 시스템 다이내믹스의 엄청난 복잡도로 인해
개개인의 모든 생활 패턴과 그 디테일들이 처리 될수 있다 해도..
예측 가능할 수 없는 '혼돈'의 시스템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또.. 역사는 반복된다.. 는 단순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치면..

개개인의 서로다른 생각과 일상사는 지극히 무작위적 행태를 나타내면서
예측이 무의미한 공간에 존재 하지만
그러한 수천, 수억의 개체들의 수만가지 생각과 행태가 모여
큰 스케일의 시간의 축상에서 쌓아가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관습.. 의 패턴은 예측가능할 수 있으며
일정 주기를 가지고 유사하게 다시 발생하는 주기성을 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논리가 가장 적절히 비지니스의 현장에 적용되는 곳이 주식시장이 되겠다.

Daily Chart 나 Weekly Chart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무모한 낭비 지만
분기별, 년별 추이를 관측하며 투자 결정을 내리는 건 스마트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쨓거나.. 얼마전 내가 아는 한 영국인이 내가 살고있는 이곳의 가까운 거리를 지나다
전혀 안면 부지의 행인에게서 느닷없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는 전혀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을 당했다.

그는 안면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어 수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오늘, 그 사건 이후 처음 다시 보게된 그의 말에 따르면 범인은 아직 붙잡히지 않았고
그가 알아낸 것이라곤 주변의 한 오래된 아파트의 일부에 왕년의 죄수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괴상한 소문 뿐이라 한다.

BBC의 계약직 특파원인 그가 길을 걸으면서,
스쳐 지나는 거의 모든 행인들에 대해 그때 그때 어떤 경계의 태세를 취해야 할지를
순간적으로 고민해야 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쓴 웃음이 날 뿐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많은 행인들을 단시간내에 일일히 관찰해가며
누구로부터든 펀치가 날아올 수 있음을 대비하며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을 것이다.

.. 그들이 편안하고 성숙된 사회의 일원일 경우..

즉, 이곳의 거리는 이미 100년이 넘게 형성되어온 매우 오래되고 잘 조직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많은 레스토랑과 은행들 그리고 커피 전문점들과 서적상,
의류상 및 식음료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정 시간이 되면 어느 곳에 무엇이 배달되고
동네의 누구 누구가 거의 일정한 시간에 어느 곳을 오가는 지가 명확한 곳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조나 폭력과 같은 실제 상황,
즉 비선형적(non-linear)한 상황이 발생될 경우 바로 911 이나 경찰에 알려져
이후 빠른 시간내에 정상 상황으로 되 돌려 지곤 하는 곳이다.

따라서, 예측이 전혀 불가능했던 그 악당의 경우, 강력한 노이즈로서 작용은 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는 예전의 일상적 패턴은 다시 돌아가게 되고.,
그 사건은 어의없는 에피소드 하나 쯤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즉 Danforth Street 라는 거리는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가진 혼돈의 시스템이 아닌,
지극히 보수적인면서 다분히 선형적인(linear)..
하나가 더해지면, 더해진 하나에 대한 반응이 기대되는
예측 가능한 선형 시스템(linear System.. Additive System) 쯤으로 생각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허지만, 적인지 친구인지가 판단이 서지 않아
끊임없이 경계하고 방어적 이거나 때론 공격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는
하루 하루 제대로 살기 힘든 사회, 도시 혹은 나라가 내 경험에서도 많았고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에 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이루어오고 있는 국가나 민족, 그리고 종교의 테두리를 수호하기 위한
또는 확장하기 위한 다툼은 물론이고
지구 생태계 전반에 걸친 지구 전체의 다이내믹스가 가지는
임의적 폭력성의 수위가 급 상승하고 있음은
결국 시스템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 온두라스에서 식사를 하러 갈때면 난 한개 이상의 대문과 철제 자바라를 통과해야 함은 물론이고
   샷건을 움켜진 경비원의 시선을 받으며 식당 안으로 안내될 수 있었다.

.. 상하이 에서 두어시간 남쪽에 위치한 어느 도시에서 머물면서 늦은 밤의 산책길에는
   항상 단단한 목검을 가슴에 껴안고 마치 무슨 검객과 같은 모습으로 나서곤 했다.

..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에서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 걸어 다니다
   군중들 가운데서 폭발해 버리는 비장한 인간 폭탄들 때문에 다가오는 행인들이
    인간인지 폭탄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된지 오래다.

.. 미국과 서유럽의 많은 나라들 역시 일견 평화롬게 드나드는 거대한 여객기들이
   언제 폭탄 덩어리로 변할 지 몰라 잠재적 테러 목표물로 지적, 이착륙과 비행 상황은 물론
   탑승객들의 면면까지 모두 면밀히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종교 간 벌여왔던 투쟁적 역사의 재발로 바라볼려 치면 정말 끔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재패적 기득권을 구가하려는 열강과 생존이라는 삶의 기본 욕구를 이어가지 위한
촌락들로 구성된 원시적 공동체 형태의 국가들 간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일상적 하루는..
어떤 작은 변화라도 그것이 얼마나 폭발력을 지닌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예측되거나 예방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는, 사건이 벌어진 후의 상황수습과 후 처리가
중심이 되는 조마 조마한 시스템인 것이다.
즉 지극히 비선형적(extremely non-linear) 시스템이라 볼 수 있겠다.

매일 매일의 단기적 상황 분석으로는 결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다음 주에 무슨 사고가 터질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세계가 되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거시적 추이의 관점을 위해, 역사적 상황을 분석해 보거나..

단순히 현대사 과거 일이백여년간의 분쟁의 상황을 분석해 보는 과정만 거치게 되더라도 어떠한
패턴을 볼수 있을 지 모른다.

외세의 침략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지만,
침략 세력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여 결국은 물리친다는
외세침략- 침탈- 산발적 저항- 조직적 저항- 독립 - 내부 분열- 침략- 투쟁- 독립...

나 같은 역사의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단순한 정반합의 논리 정도 밖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결정론적 혼돈' 이론이 적용되는 시스템 내의 어떤 시그날이 카오스 시스템을 구성하는
확률통계학적(stochastic) 데이타 인지 아니면 단순한 랜덤 노이즈 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재발 하는 가를 관측해야 한다.

많은 다양한 이민자들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인 캐나다에서는

이민자들의 출신국에 따라 문화나 언어가 다름은 물론이고
동일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등이 많이 다르다.

즉 새로운 국가 공동체에 편입되기 위해 서있는 출발 조건, 즉 초기 조건이
서로 전혀 다른 상태에서 단일 시스템으로의 융화가 시작된다.
법이라는 막강한 constraint 가 제 힘을 발휘하여 단 시간내에
어떻게든 사회의 group velocity와 비슷한 속도를 내게 한다.

사회의 순간 순간의 snapshot들은 온갖 색의 인종과 서로 다른 생각과 철학 그리고
가치관을 가지며 제각각의 삶을 영위하는 것 처럼 무질서 하게 보이지만
그 혼돈스러워 보이는 시스템은 하지만 잘 굴러간다.
오히려 더 유연하게 굴러간다.

궤적을 벗어나는 노이즈 형 행태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되는,
혹은 결정되어온 사회적 행태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제거 되기도 하지만
주로 시스템의 bug 혹은 grey area에 숨어 어느 크기까지 세력을
형성하면서 강력한 noise 로 시스템을 흔들기도(fluctuate)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인간들 중에서 인류 문화의 quantum leap을 가능하게 하는 대단한 위인들이
당시 사회로 부터 노이즈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그것도 그러한 위인급 인물들이 떠나가고 한 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위,아래의 사진들은 내가 좋아하는 돈강(Don River)에 비가 많이 온 다음에 내려가서
물결이 거센 지점들을 택해 Tripods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같은 샷을 수십장 찍은 다음
골라 color 처리를 위한 post-processing 을 한 것이다.

같은 지점의 그 개개 장면에서 물결이 이루는 역동성은 매 shot 마다 다르지만
macroscopic 한 견지에서는 거의 동일한 shape을 이루는데..
상류에 놓인 조약돌이나 수초들의 놓임새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물결을 이루게 되는거다.

브라질 정글의 나비 한마리가 퍼덕거려 북경에 태풍이 몰아치는 정도의
과장된 스케일의 chain reaction은 아니지만..


see you..

6/21/2012

아침..그리고 '일상적인 삶', Old Quebec Apr 25 2010


그르니에 의 얇고 경쾌한 수상집 '일상적인 삶'에는 '아침'에 관한 섹션이 없다.
'정오 L'Heure de Midi', 심지어 '자정 L'Heure de Minuit' 까지 있음에도..

그는 밤의 사색을 위해 찬란한 아침을 희생했는지도 모른다.. ㅎ


'우리의 일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행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고독이나 침묵 혹은 비밀로 인해 사람들과 단절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 이 모든 존재 양태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을 분석해 보면, 일상 생활로부터 삶의 결.. style.. 자체로 넘어가는,  나아가 예술 작품에까지 다다르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 들어난다. '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La Vie Quotidienne '



이제 까지의 내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아침'을 생각해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의 설레임으로 다가온 적도 있었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그 아침을 대하자 마자 온통 내 영혼의 시계가 멈춘 듯 한 적도 있었고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저주의 대상이기도 했고,
또한 감상적 추상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저 기계적이고도 단호한 시간의 흐름 속 한 場을 이루기도 했었다.

토론토에서 퀘벡까지 10시간이 넘는 여행이었지만..
또 저녁 내내 산책을 하고선 밤 늦게까지 여러 잔의 맥주를 마신 상태로 골아 떨어질 만도 했는데..
아름다운 퀘벡의 아침은 날 부르고 있었다.. 조용히..


.. 이봐요, 피터.. 일어나 아침을 만나요.. 어서..



모든 것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완벽하다!..
라고느낄 정도의 아침을 맞이한 기억은 내 경우 그리 많지는 않았다.

또한 '완벽하게 망가진 아침'을 맞이한 기억도 내 경우 그리 많지 않았는데,
결국 난 그저 평범한.. 소위 '일상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는 거다.

그리고 장그르니에 선생께서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거니..
하며 부드럽게 역설하고 있으니.. 기쁘다. ㅎ..

아침 일찍 조식과 함께 시작되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호텔 로비를 나서는 순간 맞이한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의 콜로라도 Fort Collins 에서의 아침.

미국 로키 산맥이 부드럽게 드리워 지는, 지리산 같은 부드러운 능선이 덴버에서 부터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해발 2,000 미터 고원의 도시 포트 콜린스의 아침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신선했다.
아침 습기 한 방울 한 방울이 파랗게 물 들어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 아.. 흰 손수건을 하늘로 던지면 푸른 색 물이 들어 떨어져 날릴 것 같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의 겨울..
섬머 타임의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벌써 높게 떠오른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태양에
선그라스를 꺼내 쓰며 코 끝이 쨍한 상태로 운전석에 오르곤 했던.. 신선하고 촉촉했던 아침..

여름 긴긴 밤 무주 적벽강변에서 지프를 세워놓고 사나이들끼리의 야영을 즐기며
밤새 달빛이 흐르는 Moon River의 禪 적 분위기에 한껏 취한채 맞이하던 강 안개 가득 피어 오르던 아침..

논문 과정 중 캄캄한 실험실에서 시그널 찾아 내느라 밤새 레이져 기기들과 씨름하다가
문득 고개들어 실험실 쪽 창문을 바라봤을때.. 밝아오던 여명의 아침..

비행기 엔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억지로 잠을 청하다 깨다를 반복하다..
문득 작은 슬라이딩 창문을 올려 바깥을 바라 봤을때.. 눈앞에 펼쳐지던 끝없는 구름바다..
그 구름바다의 수평선 위로 떠오르던 수줍은 태양과 함께 맞이하던 높은 상공에서의 아침..



.. 산책에서 장소는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공원들은 그 이름이 아예 '산책(로)' 이다.

그리고 극장이나 뮤직홀에는 프롬느와르 promenoir 즉 입석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말은 원래 주민들이 자주 산책하는 가로수길을 의미했었다.

파리에서 먼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는 기차역이 사람들을 끄는 곳이다.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산책하는 사람들은 역으로 모여들어, 십중팔구 모르는 이들인 여행객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한다.

..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중의 '산책 La Promenade'



2차원적 판넬식 간판에서 진화한 3차원의 큐빅 식 간판.. 넘 귀엽다.
로고는 물론 폰트와의 배열 상태 그리고 컬러링.. 간판 전문가를 휠씬 넘어,  어느 예술가의 작품일 것이니..

이제, 저 건물 벽 메시지 전달용 돌출 구조물은  색상과 글자들의 배열과 함께
관광객으로서의 내 들뜬 심사가 superimpose 되면서, 마치 회전 목마 모양의 타임머신을 탄 사람 처럼
난 기억의 단편들이 순식간에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 가졌었던 이성과 감성의
뾰족한 첨끝들을 객체적 입장에서 언뜻 언뜻 보게 한다.

너무나 사랑스런 모양새와 색상에 내 카메라에 다시 색을 구분하는 능력을 불어 넣은 뒤.. 담아 본다.



유구히 흐르는 역사의 강 생-로랑 위에 밤새 정박해 있었던 크루즈위로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고..
이제 막 깨어나고 있을 각종 선실안의 관광객 들은 성스러운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 반짝 반짝 갑판 청소를 끝내고 원탁 테이블들이 손님들을 맞이할 차비를 끝낸 관광 페리선의
자그맣고 풍만한 몸집에 관광객들은 이제 곧 가득 몸을 실을 것이다.

이 아름답고 깨끗한 초 여름 날씨의 토요일 이라니..



어젯 밤 싱그러운 반달의 기운을 받고 이제 찬란한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은 생-로랑 강은
평화스럽기 그지 없지만 여느 국가나 도시와 마찬가지로 퀘벡은 뉴 프랑스라는
프랑스 식민지로 시작하여 영국과의 여러 전투를 겪으며  영국의 지배하에 오랫동안
속해 있었으며 캐나다 연방 국가의 일원이 되는 굴곡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퀘벡시의 부두..

사뮈엘 드 샹쁠랑에 의해 1608년 세워진 퀘벡 시티는 16세기에 건설된 멕시코의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캐나다와 미국을 이루는 북미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들에 의해 정착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이다.


다시 사소한 나의 일상적 삶으로 돌아와 아침 산책길을 재차 떠 나보면.. ㅎ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를 비롯해 백작, 공작, 후작, 남작등 온갖 칭호의 귀족들과 그 자제들이
한둘씩 창을 열어 젖히며 얼굴을 내밀고서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실컷 기지개를 켤 것 같은  튼튼한 성과 그 창문들을 바라다 본다.


 유일한 장거리 육로 여행 수단이 기차였을 무렵 엄청난 자본의 캐나다의 철도 회사는
부유층 고객들의 위한 호화로운 숙박 시설을 제공하며 열차 여행의 고급화를 주도하기 위해 
이곳 퀘벡 시티와 북쪽의 노바스 코샤, 토론토, 그리고 로키산맥이 위치한 밴푸 등
주요 관광 도시에 이와 같은 샤또 스타일의 거대한 호텔들을 짓게 되고  오늘날의 명소로 자리잡게 된다.



샤또 프롱트낙 의 멋진 문장.. 날개달린 날씨한 사자 두 마리가 문장을 떠 받치고 있다.

중세의 봉건 영주들이 유럽의 각 지방에서 소 왕국을 유지하면서부터
그들 왕족과 가문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과 문장들이 만들어져 쓰여 왔는데..
유럽 각 지역을 여행 하다 보면 이러한 문장의 문화가 이어져 내려와 
현대적 디자인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큰 것을 볼 수 있다.

나 개인적으로도 저러한 문장의 디자인적 요소에 매료되어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방문할 적 마다
문장 관련 서적이나 포스터등을 구입해 모으기도 했었다.


호텔 맞은 편에는 퀘벡 주 재무부 청사가 위치해 있다.
사실 퀘벡 주는 적자 예산을 운영하면서 캐나다 연방 정부로 부터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고 있으나
퀘벡주 주민들을 위한 사회보장성 혜택을 타 주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유지하고 있어서  언론의 도마에 자주 오른다..


크레페, 라끌레뜨 그리고 퐁뒤 등을 파는 레스토랑.. 작은 성.. 르 쁘띠 샤또..
음식은 내 입맛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고 저 멋진 간판이 좋았다. ㅎ



올드 퀘벡 시티 내의 프랑스 영사관.
마치 방금 전 새것으로 교체해 달아놓은듯한 깨끗한 국기가 좋았다.




세마리의 흰비둘기 란 뜻의 Trois Colombes..
미술 갤러리 답게 아름다운 건물과 붉은 지붕 그리고 강렬한 적색의 창문 프레임이 인상적이었다.



Trois Colombes 의 붉은 지붕위로 푸르디 푸른 아침 하늘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내가 수십년을 살아가야 할 나라.. 캐나다..
낯설기만 했던 그 국기를 바라보는 심정이 해가 지날 수록 점점 달라져 감을 느낀다.

캐나다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정부에 세금을 내고, 주민으로써 여러 혜택을 누리면서
이제 날 지켜줄 새로운 국가로, 새로운 울타리로서  저 국기를 바라다 보고 있으면
정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심정이 되는 것이다.

세계에게 최다의 민족들이 모여사는 캐나다..  어려운 난민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
하지만 그 개개의 민족들이 그들 고유의 문화와 풍속을 존중 받으며 유지해 살아가는 곳.
상징적이긴 하지만 연방 총독에 이민 온 홍콩계 주민과  최빈국인 Haiti 출신 주민이 총독으로 임명되는 나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출신인지를 밝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기만 한 이민자들의 나라.

이 나라에 이제 내가 뿌리내리고 아이들이 자릴 잡으면  한민족의 영토가 그 만큼 한뼘이라도 늘어나는 것이다.
예전의 프랑스 인들이 그랬고, 영국인들이 그랬고, 중국인들과 유대인들은 언제나 그래 오고 있고.. ㅎ




see you..

9/07/2011

부조리.. 그리고 기차는 오늘도 달린다.., 토론토와 인도에서의 삶에서 스치는 생각



2011년9월 7일 오늘 아침 출근길..토론토에서 내가 좋아하는 24 시간 클래식 뮤직 채널 96.3.
이들의 모토는.. Great music for a crazy world.. :p

첨엔 젊잖은 클래식 스테이션의 슬로건이 뭐 저러냐.. 고 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그럴 듯 한 사실이다.
세상이 미처갈수록 음악이라도 제대로 된 걸 들어야 된다는.. ㅎ

짧막한 7시 뉴스가 흘러 나왔다.

.. 오늘 토론토에서는 애완 동물의 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센터가 개원합니다.
   주 대상은 개와 고양이인데요, 애완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보살핌이 극진해 지면서
   수명이 늘어난 만큼, 암 발생율이 높아져 애완동물 전용 암 센터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뉴스를 듣고 내 머리속을 맴돌기 시작한 단어가 있었다.

.. 부조리..


인간들의 곁에서 충실한 애완의 역할을 하느라 삶의 질이 대폭 향상되며 수명이 엄청나게 연장되어 왔지만
그 부작용의 표상으로 생겨나는 이곳 저곳의 암덩어리와 더불어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강아지들.. 고양이들..

자신들의 애완동물 치료에 들이는 엄청난 돈의 액수를 마다 않으며,
애정 가득한 몸짓과 표정으로 그 병들었지만 죽지도 못하는 동물들을 어루만지는 사람들..
정성스럽고 애틋하긴 하지만 기괴함과 우스꽝스러움 역시 함께하는 그 상황.. 부조리라는 말과 함께 출근 시간 내내 떠 올랐다..

인간이 같은 값이면 애완 동물 보다는 곤궁에 처한 다른 인간들을 도우는 게 옳을 것이라는
진부한 내 생각 자체도.. 부조리 한 것 같기도 하다.

금이야 옥이야 온갖 정성으로 키워 놓았더니 급기야 부모를 때려 죽이는 인간이 생겨나는 마당에,
예외없이 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애완동물들이 인간보다 더한 대접을 받는다 해서
특별할 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뭐든지 정도 문제인 것인 것이다..


인도 여행 중 스믈여섯 시간의 첸나이 익스프레스 기차 여정 중 마주치게 된었던
멀쩡하게 잘 생기고 감수성도 깊을 것 같은.. 그리고 감청색 셔츠를 깨끗하게 입은 이청년은,
광이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받침판위에 이것 저것 정성스럽게 포장된 스낵을 놓고선 이제 막 객실안으로 들어설 차례였다.

그런데..
고작 몇 루피 정도일 저 스낵 봉다리 몇십개를 팔기 위해 그가 들인 정성들은 부조리할 정도로 극진했다.


이승에서의 삶이 고단할수록 저승에 대한 극단적 판타지를 부추기는 것은 위로와 구원이라기 보다는 착취가 아닌가..
더군다나 그 종교적 부추킴의 주체측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금력 속에 이승의 온갖 달콤함을 다 맛보고 있는 터에..

부조리의 극치는 가장 찾기 힘들어야 할 곳에서 오히려 가장 손쉽게 찾아지는 자기증명적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실험실의 한 햄스터가 다른 햄스터에게 말했다.

'나는 저 학자를 길들였어. 내가 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저자가 나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지.'

..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의 신작 '우리의 神들 (Nous les Dieux)' 에서 인용


누구의 눈에는 인간의 이 모든 부조리함이 그저 조크일 뿐일지도 모른다..




bye now..


8/06/2011

窓門이 집의 영혼이었던 곳.. , Woodrow Homestead Coldwater Ontario



이사를 했다..



둘째 녀석의 학교의 학군을 옮기기 위해 소위 맹모삼천지교의 일환인 건데..
물리학을 해볼까 했던 녀석이 미술 계통으로 확~~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ㅎ



The Waltons


그런데.. 한국에서 부터 캐나다에서도 줄곧 아파트 생활을 해 왔었는데
이번에는 타운하우스라 불리는 일종의 연립주택으로 옮기게 되었다.
지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다들 중국, 한국에 놀러간 틈을 타서..ㅎ

재미있는 건 새로 이사온 집의 구조가 아래 위 삼층이라는 거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지하까지 합치면 4층 구조인 건데..
천장에는 하늘을 향해 나 있는 작은 유리 창이 있어서 낮에는 구름이 떠가고 밤에는 별이 뜬다..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4,5 층의 타운 하우스들도 흔한 편이지만
내 입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공간의 수직적 확장은 여러 모로 재미도 있을 뿐 아니라
무자게 운동이 된다는 거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하루가 다르게 튼튼해져 간다.. ㅎ

9월 부터 대학생이 되는 큰 아이는 이제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집에서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학교까지는 20, 30 분 정도의 거리 밖에 안되지만
촌각을 다투어 학업에 매진해야만 하는 대학 생활이다 보니
공대 건물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기숙사에 배정이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큰아이는 물론이고 둘째인 사내 아이 역시
하늘과 좀 더 가까운 3층에 자리한 녀석들의 방을 좋아할 것이 분명한데,
다음 주에 돌아올 딸아이는 2주 남짓의 시간만 가지고는 집을 떠난다.
녀석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기회가 있을 지..
계속 이어질 학업과 사회생활로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침 잠이 많은 딸아이를, 역시 아침 잠이 많은 아내를 대신해서 깨우는 즐거운 분주함이나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함은
이제 추억 속으로 묻히는 거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어쨌든 이제 그 방은 guest room으로 쓰이게 될거다.
친지들이나 집사람 친구들, 혹은 내 친구들이 토론토에 놀러 오면 묶을 방으로 쓰이게 된다.

이전까지의 콘도(한국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날 방문한 친구들이 같은 층에서 방만 따로 쓰다 보니 서로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층이 달라지다 보니 그러한 불편함은 최소화 될거다.


앞 마당의 작은 공간에 앉아 '집' 이란 공간에 대해 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
예전에 써놓은 글이 생각이 났다.

'창문'은 집의 영혼..

또.. 그러한 영혼이 있는 집을 손수 지으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던
어느 캐나다 사나이가 생각났다.




Pierre Barouh.. Samba Saravan



창문은 집의 영혼이다.
Windows are the soul of a house.

프로방스를 여행하며 사진집을 발간했던 뉴욕의 어느 사진 작가 부부가 한 말이다..

창문을 좋아하던 내게 이말은 너무나 적절한 한마디였다.

창틀은 신형 알루미늄 섀시로 튼튼한지, 이중 창문에 겹유리인지, 통유리인지,
도무지 집의 영혼이라고 생각되기엔 너무나 기능적 요구사항에만 매달려 왔던
한국에서의 아파트 창문.. 또 이곳 캐나다 고층 콘도들에서의 창문..

독립주택의 경험이라곤 부친의 관사와 어렸을 적의 양옥집이 전부였고
결혼을 하고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 아파트 생활에서는
창문이 내 집의 영혼일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럼 영혼 없는 집에서 살아왔던 것인가?
아니.. 집이 살아있다는 생각조차 해오고 있지 않았다는 게 옳겠다.

결혼 초엔 그저 몸 누일 공간이면 족했고..
이후엔 회사로의 접근성을 생각했었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이후론 학군을 생각했었고..
뭐 가끔 투자가치를 생각하기도 했고..

좌간.. 내가 살던 집이라는 공간은 살아있을 틈이 없었던 게다.


10월의 어느 바람 불어 좋은 날..

가을이 오면 Maple Road 라 불리우는 북쪽 길로 난 차를 몰았다.
캐나다에선 가을이 되면 마치 일기 예보를 하듯 단풍 예보를 한다.

.. 오늘 오전 8시 10분 까지는 바로 여기까지 단풍이 들겠습니다.. ㅎ

토론토를 벗어나 400번 고속도로의 북쪽을 서너 시간 이상을 차창을 열어 젖힌 채,
단풍의 색조와 향기를 맘껏 만끽하는 즐겁고 여유있는 드라이브였다.

무스코카에서 엘곤퀸으로 이어지는 휴양 리조트 지역까지 가고 싶었지만 여유를 너무 부린 탓인지
돌아올 시간을 따져보니 이쯤에서 U-turn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유턴을 하기위해서는 작은 마을을 지나 다시 하이웨이 램프로 올라서야 했고
마을을 통과하던 중.. 무슨 박물관이라고 쓴 작은 간판을 지나게 된다.

끼~~익..!!

거의 아무도 지나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 길에서 급정거를 하고는 뒤돌아 그 간판을 따라 들어서니,
평범한 한채의 집과 부속 창고들이 있는 저택이 나왔다.


그곳은 백수십년전 1800년대 초 즈음에 영국에서 부인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온
이주 정착민 아키발드 우드로우 와 그의 부인 캐서린이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곳이었다.



이 박물관 저택을 관리하는 젊잖은 신사가 집 안 곳곳을 안내하며 이야기를 해 줬다.
저택의 2층은 물론 정원의 농기계들과과 헛간들에 이르기까지 안팍을 샅샅이 내게 소개했다.

이후 난 상세한 소개의 글과 함께 이곳을 담은 사진들을 내 블로그에 올렸고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유적지를 소개한 내게 감사를 표했고
이곳의 마을 신문에 내 소개가 올려지기도 했다.


이름하여 Coldwater Times.. ㅎ


한 마을과의 인연도 그렇게 예기치 않게 만들어 지곤 하는 것이다..ㅎ


반짝 반짝 윤이나는 마루 바닥의 거실에는 널찍한 식탁과 멋진 벽 난로가 인상적이었다.
벽 난로의 장작들은 벌써 보기 좋은 숯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긴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서는 거실의 탁자를 비추고 있었고
오늘의 주인공 창문들을 이때 부터 눈여겨 보게 된다..

추억의 액자들에는 우드로우의 자손들이 걸어 놓았을 것 같은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드 여왕이 중심에 있었다.



아키발드 우드로우 일가가 방금까지도 살고 있었던 것 같이
식기 도구들과 일상 생활 도구들이 당시의 모습데로 놓여져 있었는데..

일년에 몇번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축제가 열릴때면
18세기 전통 옷차림을 한 아가씨들로 부터 당시 우드로우 일가가 쓰던 가재 도구 및 식사 용기들로
식사를 대접 받을 수도 있다 한다.

우드로우가 정착했을 1700년 대 말에는 이곳엔 사나운 추위와 짐승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죽 추웠으면 마을 이름도 Coldwater 라 했을까..

그는 통나무를 베어 작은 집을 지었고,
그가 사냥 해온 짐승들의 가죽으로 그의 아내는 가족들의 신발과 옷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 때 마다 그는 한 칸씩 한 칸씩 집을 늘려 갔으며,
나중에는 지금과 같이 2층을 얹어 저택의 면모를 갖췄다 한다.
2층을 오르는 계단의 중간 쯤에는 그가 나무로 직접 만들었던 유모차와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과거 프랑스와 영국이 미국의 독립에 맞서
미국보다 훨씬 추운 이곳에 정착민들을 보내면서 땅을 불하해 줄 당시,
이주민들이 가진 거라고는 신대륙에서의 개척 의지와 고작 이 지도가 전부 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반긴 것은 엄청난 추위와 쉴새없이 내리는 눈,
당연히 자신들의 영토를 수호하려는 aboriginal 어메리칸 인더언들의 도끼와 화살..
그리고 배곺은 사나운 곰들과 코요테들 이었을 것이다.


친절한 안내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해 준 우리의 집사 아저씨는
코만 좀더 뭉특했으면 딱 칼 말덴 이다. ㅎ


이층 펜트하우스엔 간난 아기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아름다운 창문이 있었다..


아키발드 우드로우..

그는 용감한 개척민으로써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굳건히 캐나다 변방의 한 지역을 개척한 사람도 아니요
무슨 대단한 리더십을 가지고 공동체를 이끌었거나,
식민지 개척의 역사적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따뜻한 저택을 돌아 보면서
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그가 매우 부러웠던 것은..

한 사나이로써,
아무것도 없는 이 모진 곳에 작은 통나무 집을 세우고 그 집을 늘려 나가며,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에서 부터 거의 모든 것을
부인과 함께 만들어가며 살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가족들의 존경을 받으며 오래 오래 잘 살았다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실이 새삼 너무나도 훌륭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피터.. 너 역시 쁘티 브르주아 근성의 어쩔 수 없는 작은 인간이었구나..
라는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솔직히 난 그렇게 건강하고 성실하게
청교도 적 인생을 살다간 그가 몹시 부러웠다.


초기의 단순한 통나무 집에서 시작해 부인이 아이를 하나씩 가질 때 마다
그는 어떻게 방을 하나 더 만들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어딜 어떻게 늘려 집을 넓혀야 될가를 설계하고
필요한 재목을 직접 베어와 재단을 하며 뿌듯해 했을 아키발드..

해산이 가까워 오며, 새로 만든 방에 놓을 요람과 이부자리,
난방을 위한 스토브, 그리고 그 방의 창문까지 하나 하나 만들며 장만해 가는
아비로서의 그 심정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의 집 뒷 정원엔 아마도 그가 처음 집을 지으며 심었을 성 싶은 큰 고목이 서있었고
뒤로는 꽤 넓고 깊은 내가 흐르고 있었다.

..



stay as a cool daddy as much
and as longer.. somehow..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