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2011

볼레로 그리고 Ravel, les Uns et les Autres.. Some and the Others.., 끌로드 르루쉬 Claude Lelouch

언제부턴가 난 다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

얼마 안되는 인생이지만 이제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 무르익어 가면서 .
내 삶 속에서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한 거다.

그 중에는 수백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많고 아직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날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이 남긴 저서 와 음악, 그림과 영화, 그리고 멋진 자동차와 
우주선 등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일깨우며 정신적으로 부지런하게 만들며 깨어있게 한다.
감사할 밖에..

그래서 생겨가고 있는 습관은 그들이 남긴 업적 그 자체를 즐김과 동시에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았고 어떤 열정과 고뇌 그리고 노력속에서 그러한 업적을 낳았는지,
한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아마도 나도 제대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상인 것 같기도 하고
더 이상 어떤 회사나 조직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느긋함과 여유가 있어서 가능할 것이다.

어쨓든.. 좋다.
굉장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신나고 또 벅차다.

나보다 훨씬 오랜동안 한 오백년 씩 살수 있었던 초인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똑 같은 형태의 인간으로서 살면서
어떻게 그런 위대하고 거대한, 혹은 섬세하고 깊은 업적들을 낳을 수 있었는지..
개인적 입장에서 정말 궁금해 지는 것이다.

또한 같은 인간으로 정말 자부심과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언젠가 외계인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누구 누구 누구와 같이.. 나도 같은 인간이라구요! 알아요?
하며 '인간'임을 으쓱대고 싶은 것이다. ㅎ


끌로드 르루쉬 감독의 영화 볼레로 (원제: Les Uns et Les Autres)

1966년 깐의 대상인 황금종려(Palme d'Or)상을 수상한 영화 '남과 여'와 함께 
르루쉬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오랫만에 라벨을 만나니 머리털이 쭈삣 선다.

채플린의 딸 제랄딘을 보는 것도 참 좋다.
그녀를 보면 마음이 슬퍼진다.
핍박받던 영화 속의 채플린을 떠올리게 한다.
닥터 지바고에서의 아름답지만 슬픔 운명도..

수렴(convergence) 점을 향해 반복되는 아름다운 리듬..
엉킨 매듭을 풀고, 응어리진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볼레로..

라벨이 정말 뇌질환을 앓았더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저 아름다운 리듬 속에서
자신의 안식을 찾으며 잠들고 싶었을 지 모른다.

베자르 발레와 볼쇼이가 협연하는 볼레로
볼쇼이 의 발레리나.. Maja Plisetzkaja



2008 년 뉴욕타임스는 Dr.Miller 라는 뇌전문가가 뇌질환의 일종인 FTD 와 예술성 과의 관계를
설명한 기사를 통해 볼레로(Bolero) 를 작곡할 1928 년 당시 라벨(Ravel)은 
FTD/ frontotemporal dementia or degeneration(이마관자엽 변성)이라는 일종의 치매를 앓았을 수 있다며
볼레로의 반복적인 리듬이 점증하다가 종국에 폭발로 마감하는 것이 
그러한 그의 지병에 기인할 것일 거라는 주장을 했다. 

그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 for the Left Hand) 역시 
그가 뇌 질환을 앓았던 병력이 있던 당시에 작곡된 것으로 뇌질환 상태에서 작곡된 곡이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18분에서 19분 동안 쉼없이 계속 연주되는 가운데 여러 템포와 키 상에서
몇개의 섹션이 주고받기를 거듭하며, 곡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는,
전반 섹션에서의 음들이 점점빠른 속도로 중첩되면서 두개의 템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데서
볼레로와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곡의 초연 당시 관객들은 야유와 함께 의자까지 집어 던졌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당시의 클래식 음악에 젖어 있던 귀족들은 이러한 반복의 파격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앓았던 질환이 상기된 것과 같은 뇌 질환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핸디캡을 승화시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창작한 셈이 된다.

  ...

라벨은 굉장히 지적인 인간이었데 독서량이 엄청나 그의 서재엔 천여권의 장서가 가득했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그는 벌써 자각이 가득한 자부심 넘치는 젊은이로써 옷 매무새와
행동 거지 하나하나에 일일히 신경을 썼다. 작고 마른 체형에 달라붙는 옷을 입었던 그는
잘 빼입은 경마 기수 같았는데, 큰 머리는 그의 높은 지적 수준과 잘 매치 되었다 한다. 

그는 맛이 강한 음식에 고급 와인 그리고 다분히 영적인 대화를 즐겨 했고 
젊은 시절 부터 대단한 애연가 였다.

파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 접한
림스키 코르사코프 가 지휘한 러시아 음악을 들으며 큰 감명을 받는데,
라벨과 동시대에 살았던 에릭 사티, 엠마뉴엘 샤브리에 그리고 끌로드 드뷔시 역시
당시의 박람회에서 외국곡들의 연주를 접하며 엄청난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는 많은 예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박람회 후 파리의 예술적 지형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할 정도다.

14살이었던 라벨은 이때 리카르도 비녜 라는 동급생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비녜는 이후 라벨과 평생 친구로 지내며 라벨의 피아노곡들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피아니스트가 된다.
스패인 출신이었던 그는 라벨과 스페인 음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음악적 동지가 되기도 한다.

라벨과 비녜 두친구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러시안 작곡가들에 대한 경탄을 주고 받으며
애드가 엘런 포, 사를르 보들레르 그리고 스테파니 말라르메 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즐기며 
우정을 쌓게 된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대단한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ㅎ

음악에 소질을 발견한 라벨의 부모들은 라벨을 파리 음악학교(Conservartoire de Paris)에 입학시키지만
라벨의 피아노에 대한 자질에 비하면 학업 성취도는 전혀 좋지 않았다. 
곡절 끝에 가브리엘 포레 밑에서 공부를 다시 하게 되는데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위해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이 사부지간의 관계는 평생 친구와 동료의 관계로 발전된다.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1900년 즈음에 젊고 혁명적인 아티스트, 시인, 비평가 그리고 음악가들이 모여 결성되어
Apaches(아파치들)로 불리던 모임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지적인 토론을 즐겨 하면서 각자 분야의 예술 작업을 서로 발표한다.
한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도 이 그룹 멤버였는데 
이때 라벨은 그의 첫 피아노 작품인 Jeux d'eau (fountains)를
연주하게 되고, 비녜는 라벨의 초기 대표작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를 연주하기도 한다.


참 멋지게도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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