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2011

물반.. 뮤지션 반.. :p , '라티나다' 토론토


난 인생을 살면서 '우연'히 일어났던 사소한 사건들을 기화로
마음에 드는 장소,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음악과 만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그 우연이라는 것에 조금씩 중독되는 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 우연히.. 또 무슨 신나는 일이 벌어질까.. 하며.. ㅎ


Cuarteto Marcano - La juma de ayer


토론토에는 Bloor Street라 불리는 도심을 통과해 동서로 뻗어있는 아주 오래된 큰 도로가 있는데
토론토는 이 블루어 거리와 남북으로 뻗은 Yonge (영) 길을 중심으로 개발, 발전되오고 있다.


몇 주전 이곳을 처음 오게 된 어느 날 오후, 내가 있는 댄포스 거리의 단골 아이리쉬 펍에서
이미 두세잔의 기네스 맥주로 배를 잔뜩 부풀리고 나서였다.

전시회나 컨서트 하는 곳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 시내로 나가자며 전차에 올라 탔는데,
토론토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눈을 떴을땐 이미 전차는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잠을 좀 더 자두자.. 며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종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아무래도 맥주는 화장실을 제대로 확보해 논 상태에서야 마음 껏 들이킬 수 있는 법.

처음 와보는 종점에 내려 화장실이 급한데.. 으이구..
주변의 작은 Mall이나 소규모의 Wal*Mart등에는 아무리 찾아도 공중 화장실이 없었다

와, 어찌 이런 박한 동네가 있을까 의아해 가며..
초인적 의지로 꾹 참으며 주변을 걸어다니다가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있는 이곳 근처까지 왔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웨스턴 스타일의 바가 아닌, 당시 거의 아무도 없었던 이곳에 들어섰던 거다.

화장실 갔다가 맥주나 한병만 마시고 나가지 뭐.. 라며.


그때.. 카운터 바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피노키오를 만든 제퍼뜨 할아버지 비슷한 분위기의 알프레도를 만나게 된다.


마침 그날은 웨이트리스가 못나온 날이라 알프레도는 매우 바쁘게 손님들을 위해
들락 거려야 되는데.. 난 눈치도 없이 마가리따가 맛있다며 네 잔이나 시켜 마셨다. ㅎ


.. 와~~  여기 마르가리따 (혹은 마가리따) 진짜 맛있게 만든다.. 정말 제법이네.

감탄하며 화장실 갔다가 바로 가겠다던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선
Patio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호킹 교수의 생각을 더듬어 가며 너무나 좋은 햇살을 즐기게 된거다.

뭐, 그러면서도 그 마르가리타 맛 말고는 별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았던
'라티나다' 바 에 대한 특별한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급한 용무도 다 처리 했겠다.. 
오리지널 라티노가 제대로 만들어준 기막히게 맛있는,
신선한 라임즙 가득한 마가리타도 두어잔 째 마셨겠다, 이젠 이곳이 슬슬 마음에 들려고 하는 바..
카메라를 들고 바의 이곳 저곳을 담기 시작했고 알프레도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장식을 위한 장식이 아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취를 물씬 풍기는 악기들과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소박한 이곳에 대해 금새 친근함까지 느끼게 했다.

그러다 한떼의 쿠바 젊은이들이 들이닥쳤는데,
그들은 이번 토론토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쿠바에서 온 룸바 연주 그룹이었다.

아직 두세주 남은 축제 기간전에 워크샵과 연습을 위해 온것 이었는데..
알프레도는 내 등을 떠 밀며 2층 음악 연습실로 가 보라 했다.
가서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으라고..

덕분에 난 이들의 Afro-Cuban 룸바를 즐기며
이 젊은이들의 열기를 재즈 페스티벌 전에 미리 담아볼 수 있었다.





룸바 그룹을 취재(?)하고선 다시 아래 층 내 자리로 돌아오니,
바 앞에서 묘령의 여인이 샌들의 끈을 조여매고 있었는데.. 그 자태가 워낙에 매혹적이라.. 


이 묘령의 여인은 가창력을 자랑하는 쿠바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였음이
이 번 두번째 방문에서 밝혀졌다. 

이것이 이곳 라티나다에 어떻게 우연히.. 아니 desperately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이다.


그리고 오늘..
오후 5시에 문을 여는 이곳을 또 너무 일찍 와서 한 삼십분여를 기다려야 했다.

바로 5 미터 모퉁이를 돌면 토론토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그리고 온갖 종류의 수목이 가득한
유서깊은 High Park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심지어 작은 동물원까지 있다는 데..

당근 내가 제일 먼저온.. 아니 오픈도 하기전에 당도해
계면쩍게 줄창 기다린 충성스런 첫 고객이었다.


먼저 마가리타 를 한잔 마시고 나서 피나 꼴라다 를 마시기로 했다.

무자게 더울 때는 너무나 차가워서 머리가 띵~ 해지는 마가리타 나 삐나 꼴라다가 역시 최고다.

아이가 내게 꼭 읽으라고 내 백팩에 까지 꾸겨 넣어 준 파올로 꼬엘료의 'Veronika Decides to Die'..

별 이유도 없이 너무 똑같은 일상이 싫어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하다 깨어난 젊은 인텔리 여성이야기..

큰 아이는 이 책과 코엘료의 다른 책 두권을 읽고선..
현실과 비현실(자신만의 판타지) 을 오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작가의 관점에서.. 또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의 시각에서..
그러한 세 카테고리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현실 vs 판타지'에 대한 분석적 글로 에세이 를 썼었고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녀석이 줄을 쳐 가면서 읽었던 부분을 읽을 때는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이제 녀석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다.
어린 아이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이제 코엘료 같은 철학자 급의 작가와의
내면적 소통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열기의 오후 부터 햇살이 이제는 기울어져 가는 초 저녁까지
그렇게 patio 파라솔 아래 홀로 앉아 알프레도가 나와의 대화를 위해 다가올때까지
코엘료를 읽고 있었다.



알프레도는 칠레 사람이었다. 나이는 55살로 나 보다 5섯 살이나 많았고 벌써 손주들 까지..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도 하는 음악가 이기도 했고, 캐나다에 온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자동차 딜러십을 가지고 일하다가 3년전 이 레스토랑을 구입해서
라틴 음악을 주로하는 뮤직 레스토랑의 사장이 된거다.
알고보니 그는 내가 좋아하는 탠포스 거리의 도라 키오 아이리쉬 펍에서도 많이 공연을 한 터였다.

그는 이제 곧 오늘의 연주자가 온다면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는데..
유쾌한 음성과 큰 몸짓으로 들어서는 이를 반기며 내게 소개하는데
그는 에바리스토(Evaristo)란 이름의 쿠반 커내디언 뮤지션이었다.

내 앞에 앉은 그는 앉자 마자 신이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2주전에 쿠바 정부에서 자신에게 쿠바 시민권을 부여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로 캐나다에서 활동해온 그가 작년 쿠바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1등으로 입상한 연유로
쿠바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대접이 하루아침에 달라 졌으며.. 바로 시민권을 받았다는 이야기 였다. 이해가 잘 안되지만, 해외로 이주한 쿠바인들에게는 쿠바정부에서 웬만해선 쿠바 시민권을 잘 안 주는 것 같았다. 하바나에서 태어난 그는 1997년 캐나다에 정착하기 전 이태리 밀라노에서도 수년간 연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에바리스토가 이날 밤에 부른 노래..
쿠바의 대표적 볼레로 가수였던 뽈로 몬테냐즈의 아름다운 곡이다.
취기가 한참 오른 상태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리듬이 흘러 문득 바라보니
에바리스토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래의 유 튜브 음악은 몬탸녜즈가 부른 오리지널 곡이다..

Un montón de Estrellas (수많은 별들.. A Heap of Stars)


에바리스또 의 새 앨범.. 'Siempre que llueve' 

에바리스토는 새 앨범에 수록된 자신의 뮤직 비디오가 무처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MP3 Player로 영상을 보여 줬는데.. 유튜브에 아래와 같이 올려져 있다.




알프레도가 먹고 있는 저 Grilled Calamari 는 내가 방금 시켜 먹었던 것인데,
영어가 좀 서툴었던 멕시칸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와인을 한잔 더 가져달라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똑같은 깔라마리 한접시를 다시 가져온 것을.. 알프레도가 할수 없이 해치워야 했다. ㅎ


줄곳 합석을 해서 이야길 나눴던 마누엘.. Manuel..
주로 이곳 라티나다에 출근 도장을 찍는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는 못한 것 같다.
생각이 많은 친구였는데.. 주로 내 생각에 동조를 했으며, 내 블로그의 사진들을 아주 좋아했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멋진 윌리엄 텔 모자를 쓰고 있는 이가 역시 칠레 출신의 뮤직 프로듀서인데
에바리스토 와는 익히 잘 아는 사이였다.

에바리스토는 자신의 새 앨범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건넨다.
옆 자리의 부인은 캐나다에서 꽤 잘나가는 작가다. 프로듀서의 부인으로 이곳을 자주 오는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좌간 계속 껄껄거리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새 앨범에 관한 에피소드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해는 어느덧 지구의 반대편을 깨우러 사라지고..

알프레도가 안보인다 했더니
그는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너무나 진지하게 연주를 하고 있었다. 


칠레의 아름다운 자연은 꼭 봐야 된다며 화산과 하늘..
그리고 칠레에서 바라보는 태평양 이야기를 들려줬던 알프레도.

그는 유쾌하면서도 매우 진지한 사나이였다. 
첫 만남에서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는데
역시 이번 두번째 만남에서 아예 뿌리를 뽑았다.. ㅎㅎ


내가 알프레도와 쿠바노 뮤직 프로듀서 둘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을때
우리 착한 멕시칸 아가씨는 주문을 처리하러 내 앞을 하늘 하늘~  지나곤 했다..


 그냥 보기에도 아주 오랜동안 음악적 호흡을 맞춰온 것 같은 이 두사람의 연주는 참 편했다.






우측에 있는 이도 음악하는 사람인데, 알프레도의 연주를 열심히 들었다.
좌간.. 이날 이 늦은 밤 이곳에 있었던 열명 정도의 사람들 중에 절반이 뮤지션들이었다.

물 반, 뮤지션 반... ㅋ


벌써 깜깜해진 늦은 밤.. 옆 집 아이리쉬 펍에선 젊은이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자신의 새 앨범에 대해 수다를 떨던 에바리스또가 드뎌 노래를 시작했다..





Polo Montanes.. Como Sera Manana

뽈로 몬타녜즈의 볼레로 형식의 곡들은
내가 익히 듣고 사랑하던 것들 이어서 너무 반가웠다.


Si Fuera Mia..  If it was me..

난 음악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은 善하다.

뭐, 나를 비롯한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악한 건 아니지만.. ㅋ

다들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있고 너무나 생각이 많다.
잔머리들이 쉴새 없이 돌아가고.. 무례할때가 많고..
제 잇속이 아니면 금방 돌아서기도 한다.

평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본래 다른 이들보다 더 선해서는 아닐 것이다.

단지 음악이 가지는 속성때문에.. 간혹 악마성을 추구하는 극단적 락음악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음악적 속성에 기인하는 것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좋다. 이들과 이야기 하면서 웃고 떠들면 참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같은 순수함으로 빠져든다.

물론 음악가들도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느라 고뇌가 크다.
또 현실적으로 부응이 되지 못하면.. 생활고에 찌들기도 한다.
종종.. 이들도 그러한 고뇌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곁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음악과 함께해야하는 이들은 그러한 통상적인 인생의 질곡을 지나면서도
기본적으로 삐뚤어지기가 힘들다.. 망가지기가 일반인들 보다는 어려운 것 같다.

이들 곁에서 그들의 밝고 순수한 볕을 쬐면서 난 조금이나마 재충전된다.
감사할 뿐이다..


by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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